장 보 연 교수
장 보 연 교수

예수님은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했다. 악마는 금식으로 지친 예수님에게 다가와“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했다. 예수님은 이런 악마의 유혹에 대해서 단호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다”며, 악마의 유혹을 물리쳤다. 

헌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 있는 인간들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 버렸다. 인간은 떡, 돈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보니 인간의 삶은 허무하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방황한다. 타인을 위해서 살지를 못한다. 나의 마음서 너와 그의 마음으로 성령이 흐르지 않는다. 고인물과 같이 썩어가고 있다.  

그렇다 오늘날 인간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가슴이 돌덩어리가 되어 메마르고 냉정하다. 이웃을 사랑하기에는, 풍성한 삶을 살기에는 인간의 마음이 너무 차가워 졌다. 냉정해 졌다. 소유욕과 쾌락애의 욕구에 내맡겨진 인간, 물질적인 존재로 변해버린 인간, 이기적 자기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에게 예수님은 결단하라고 한다. 

인간의 손은 내 뜻을 관철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고, 살인을 한다. 소유욕을 충족시키며, 부정한 재물을 움켜쥐고 지배욕을 충족시키려고 강권을 휘두른다. 이런 인간을 향해 예수님은 발과 손을 끊고, 새 인간이 되라고 한다. 성경 마가복음 9장43-47절은 내 의지를 직접 실현하는 수단이 되어버린 손과 발, 범죄 한 손과 발을 잘라버리라고 한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불구의 몸이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2)어떤 사본에는 44절과 46절에 48절과 같은 말이 있다/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발을 찍어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3)어떤 사본에는 44절과 46절에 48절과 같은 말이 있다/또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애꾸눈이 되더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누구나 다 불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이 말씀은 내가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나 그릇된 길로 빠져드는 유혹에서 해방되라는 말이다

또한 눈을 빼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감각적인 욕심에 끌려 수동적인 삶을 살지 말고, 뚜렷한 주체성을 가지고 살라는 것을 교육한다. 인간 모두는 외부적인 모습에 사로잡히지 말고, 새로운 눈을 뜨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새로운 시대가 열린 새해, 새 인간으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손을 끊고, 발을 끊고, 눈을 빼라는 예수님의 결단의 말은 인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폭력적 억압과 수탈의 악순환 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손과 발은 폭력적 악순환의 사슬에 매여 있다. 인간의 눈은 이 악순환의 거대한 체제에 현혹되어 있다. 예수님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결단하라고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가 열린다는 것이다.

인간은 재물에 의지하고 돌로 만든 떡을 먹으면서 이기적인 탐욕의 노예가 되어 손과 눈으로 감각적인 쾌락을 즐기다가 모든 것이 소멸되는 하나님의 분노를 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기적인 안락의 삶에 빠져 있는 손을 끊고 발을 끊고 눈을 뺌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해야 한다.

계묘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하지만 인간 모두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상태로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킬 수 없다.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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