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성 교수
김 재 성 교수

참된 성도들은 오직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만을 따르는 양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도 함께 하시며,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어서 교회를 이끌어 주신다. 모이는 습관을 실천하는 참된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교회에 모이는 성도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지원하며, 양육을 받는다. 이로 인해서 성도는 영적인 양분을 공급받기도 하고, 다른 성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교회의 정기적인 예배와 경건한 기도회, 소그룹 성경공부, 제자훈련 과정, 봉사담당자로서 맡은 부서의 행사 등에 참여하는 성도만이 책임감을 갖게 되고, 자신의 믿음을 연습할 수 있다. 따라서 성도들의 모임이 가장 결정적인 요체이다. 

예배는 성도들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여, 믿음의 반응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였을 뿐이다. 절대로 강압적으로 예배를 드리도록 겁을 주거나, 압박을 하시지 않으셨다. 진심으로 받은 바 은혜가 넘치고, 헤아릴 수 없어서,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범사에 감사하고 즐거워하여 하나님을 향해 경배를 올리는 것이다.     특히 각자 소속된 지역 교회에서 모이는 공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역시 기계처럼 시간표에 따라서 나아가 단지 출석했음을 확인받는 사항이 아니다. 또한 반드시 주일날 오전시간에만 어떤 형태로든지 참가를 해야만 하는 의무사항도 아니다. 일주일의 첫 날,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들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 뿐이다. 

따라서 현대인들이 편리한 방식대로 아무 곳에서나, 자기가 참여하고 싶은 시간에 인터넷에 접촉해서 예배를 올리는 것으로 그저 일시적이며, 임시적인 비상상황에서 해결방안일 뿐이다. 경건의 삶을 유지하려면, 개별 성도가 혼자서 제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된다. 컴퓨터나 동영상 매체에서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얻어서, 나태해지지 않도록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모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채, 임의적으로 편리함과 나태함에 젖어서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습관”이 들어서는 안된다.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으면서, 선한 영혼을 가꾸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직장이나, 병원이나, 음식점이나, 마켓 등 자신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곳에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직접 방문하고 있다. 필자는 눈이 많이 내려서 주일 예배를 포기하고 오지 않았던 날을 기억하고 있다. 너무 많은 성도가 결석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한 성도는 교회당 옆에 병원에는 출근하면서, 예배 시간에는 나오지 않았음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렇다. 필자는 그 주일에 많은 반성과 함께 새로운 다짐을 했었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한, 내 발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남아있는 한 반드시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올리자고 결심했었다.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이처럼 먹고 살아가는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않고 열심을 낸다. 사람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려고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과연 예배를 올리는 일에도 그처럼 열심을 내고 있는가? 하나님께 예배를 올리는 일에는 그정도의 열심히 없다면, 나쁜 습관에 젖어있는 것이다.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바, 초대교회 성도들은 미래를 기대하면서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소망”(hope)을 품고 살았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재림이 임박하였음을 굳게 확신했고, 최후 심판을 준비하면서 죄를 멀리하고, 날마다 깨어있으면서 경건한 삶을 추구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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