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시편 150은 가장 알려진 시 중의 하나로 전체 시편의 절정을 이룬다. 보통 찬양의 모범으로 통한다. 시인을 따라 ‘찬양하라’를 10 차례 (두 차례 할렐루야를 포함하면 12번) 거듭 되뇌이는 동안 시편에 저절로 깊이 몰입된다. 전체 시편을 효과적으로 마무리 짓는 강력한 결론이다. 놀랍게도 시편 150은 공신력 있는 글쓰기 모범처럼 보인다. 한 때 5W 1H로 통용되던 육하(六何)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모두 6절로 이뤄진 짧은 글이지만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등을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시인은 찬양을 주제로 정하고 다음 여섯 항목을 통하여 ‘야웨’를 노래하라며 청중을 초대한다.  

찬양의 대상(whom) - ‘야’ 하나님(1,6절)
찬양의 장소(where) - 성소, 궁창(1절)
찬양의 이유(why) - 능하신 행동과 지극히 위대하심(2절)
찬양의 도구(with what) - 나팔, 비파, 수금, 소고, 현악, 퉁소, 자라바, 징(3-5절)
찬양의 방법(how) - 다양한 연주, 춤(4절)
찬양의 주체(who) - 호흡이 있는 자마다(6절)

사실 1절과 6절의 할렐루야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두 단어로 구성된 짧은 구문이지만 찬양의 주체와 대상이 명시되었을 뿐 아니라 신학적 함의가 깊고 크기 때문이다. 번역어 할렐루야는 한 낱말처럼 보이지만 히브리어는 ‘할렐루’(וללה)와 ‘야’(הי)가 결합된 구문이다. 자세히 말하면 “‘야’를 찬양하라”는 2인칭 복수 명령형이다. 우선 동사 할렐루의 기본형은 할랄(ללה)로서 현재 피엘형이 되어 ‘뽐내다, 자랑하라’로 의미가 강화된 상태다. 보통 ‘찬양하다’로 번역되지만 사전적 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찬양하라는 정작 피엘의 적극적 능동적 강조적 측면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시인은 시편 150을 통하여 ‘찬양하라’를 10 차례 반복하고 온갖 악기를 동원함으로써 피엘 동사 ‘할렐’의 강조된 뜻을 거듭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야’는 구약에 20여 차례 언급되는데 대부분 시편에 집중되고 이사야에 세 차례 나온다(사 12:2; 38:11×2). 본래 ‘야웨’(הוהי)를 단축형으로 표기한 데는 여기에 신앙적 좌절과 깊은 신학적 성찰이 들어있다. 탈무드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후 야웨는 본디 ‘거룩한 네 글자’의 일부를 숨기고 처음 두 글자(הי)만 드러내셨다. 야웨의 존귀한 이름이 더 이상 모독 받지 않게 하려는 신앙의 자각이다<Tehillim, 1742>. 이후로 ‘야웨’를 직접 거명하는 대신 ‘아도나이’(ינדא)라고 칭하는 전통이 자리 잡게 되었다. 

시편 150에서 가장 많이 할애된 부분은 3-5절에 언급된 찬양의 도구와 방법이다. 이 구절에 집중하면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다윗과 백성들이 보여준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다윗은 3만의 군사로 호위하고 수금, 비파, 소고, 양금, 징 또는 제금(cymbals) 등으로 연주하며 법궤의 예루살렘 입성을 축하하였다(삼하 6:5; 대상 15:28; 대하 5:13; 느 12:37; 시 33:2-3; 68:24-25, 149:3). 감격스런 장면에서 다윗이 느꼈을 감동과 벅찬 심경이 잘 드러난다. 특히 제금 또는 심벌즈가 큰 소리로 절정을 유도하는 연주법은 시편에서 확인되고 구약에 뿌리를 둔 것이다. 이렇듯 자바심벌즈가 반복하여 찬양의 강도를 한층 끌어올리면서 결론을 맺는다. 온갖 종류의 악기를 등장시켜 하나님을 찬양하기 때문에 ‘음악가의 시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인은 찬양의 주체를 특정하지 않고 ‘모든 나라와 백성’(시 117)을 넘어서 ‘온 땅’(시 100)과 ‘호흡이 있는 자는 누구나’(6절) 야웨를 찬양하도록 요청한다. 사실 시편 148에서 이미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러므로 시편 150은 모든 호흡이 있는 피조물의 목적이 마땅히 하나님 찬양이라고 선포한다. 생명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지탱되고 피조물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바르고 가장 진실한 호흡은 하나님 찬양이다. 어떤 소리도 하나님 찬양보다 아름답고 은혜롭지는 않을 것이다.’<Mays, 451> 따라서 시 150편 6절의 초대는 앞의 초대(시 145:21; 148)를 마무리 짓는 결론이자 대단원이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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