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세상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면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면이 더 크고 넓고 무한하다.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생명을 가진 동식물과의 생명 자체가 다르다. 사람의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인 입장에서 이해함이지 타 종교를 믿고 있는 자들에게는 이해를 달리할지도 모르는 견해다. 기독교 이해에 앞서 일반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연약함 때문은 아닌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 발생할 경우 사람들은 사람의 능력보다 더 강한 신의 능력으로 해결 해보려고 신의 힘을 빌리려 한다. 그러다 보니 강하고 크고 오래된 것들에게 신이 있다 하여 섬기는 정령 숭배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산과 강, 나무와 바위 그리고 호수, 바다와 같은 곳은 분명 신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무나 돌로 새긴 우상을 만들어 섬기거나 아니면 험준한 산이나 신비한 모양의 바위에 신이 있다고 하여 영험하고 믿는다.

심지어 사람이 태어나면 사람보다 강한 짐승을 골라 열두가지 짐승 중 해당 되는 띠를 붙인다. 사람은 본래 태어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짐승과 연결시켰다. 2023년은 토끼해라고 하면서 토기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강단에서 설교 내용으로 활용하는 지도자들도 있다는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단의 세력은 사람이 사람을 낳으면 하나님의 형상이 이어짐인데 사람이 사람을 낳자마자 짐승의 띠를 붙여 짐승 한 마리가 태어났하며 애써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에게서 지워 사단의 세력을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아마 세상은 사람이 해야 할 하나님을 닯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하고 사람이 짐승과 같이 인명을 경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스포츠 신문이나 인터넷상에 일일 운수를 보게 하는 지면이 있다. 띠별로 그날의 운수를 보게 하여 은연중 그대로 믿게 한다. 사람들은 신 불신 간에 자신의 막막한 하루의 운세를 짐승과 연결시켜 믿는 풍조는 사회는 더욱 어지럽히고 있다. 거기에다 기독교도들도 이러한 풍조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함께 즐기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풍조가 무서운 것은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운에 맡기는 어리석음을 신앙처럼 생각함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미신에 빠져 앞날을 요행이나 철학자들이 만들어놓은 통계에 묻혀 버린다. 자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결정된 운에 맡겨 버리고 본인은 의지는 실종되어 버렸다. 

그리고 또 다른 사건은 기독교 신앙교육의 약화로 인해 기독교 색채를 가진 유사 기독교와 이단들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 교회에 식상한 신자들이 대거 기존 교회를 이탈하지만 뚜렸한 대책 없이 속수무책이다. 국내에 약 십만 개가 넘는 교회가 있고 십만이 넘는 교역자가 있는데 신자의 수는 코로나 이후에 전체 신자의 사십 퍼센트가 주일 성수를 하지 않고 관망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청소년 가운데 대학생들의 교회이탈이 위험할 수준이라는 조사보고가 있었다. 대학생들의 탈종교와 교회 미 출석은 심각할 정도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한국교회의 미래가 심히 걱정할 정도다. 이제 교회의 눈을 들어 교회 내부를 보라 성장 성장 부흥 부흥만 외치는 것보다는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빼버리는 자라나는 세대 특히 청소년들이 교회를 이탈 하지 않도록 하는 특단의 대책을 기획하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지금까지 눈여겨 보아왔단 서구 교회의 찬란한 교회 건물 속 텅 빈 모습을 재현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예 종교를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난다고 하니 걱정이다.

교회는 현재 개 교회의 모습만 볼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보도록 해야 한다. 왜 사회는 십자가를 높이 단 교회를 왜면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교회가 사회에 존재하고 있으나 교회가 사회에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교회는 사회인들이 바라는 신령함과 거룩함이 낡아 세월의 흐름에 휩싸여 종교성이 살아 있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충족하기 위해선 교회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가 세상에 세워진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선 교회를 시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엄숙하게 고백 되고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현재 교회는 어떻게 보면 성공의 잣대를 첨단 건물과 수많은 신자가 기준이 아닌지? 지도자들이 생각이 목회 성공은 몇 분이 영혼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가 아니라 단기간에 많은 교인을 모으고 예배당을 건축하였느냐이다. 이러한 세속적 기준이 초대 교회가 세워질 때의 가치로 돌아가야 존재 이유가 살아난 교회로 이해될 것이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