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환 목사
김 명 환 목사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도 인간의 탐욕과 무질서가 만들어낸 재앙인 것은 분명하다. 세상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친교를 나누고, 사귄다. 의로운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끼리, 죄인은 죄인끼리, 노예는 노예끼리, 같은 인종끼리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원칙이다. 교회는 이래서야 되겠느냐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성령 안에서 화해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합일을 이루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서는 처절하게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목회자들도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과 교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예수님의 이 같은 가르침을 잘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서는 거룩한 하나님과 추한 죄인의 만남을 얘기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이들과의 사귐이 신앙의 원칙이다. 이럴 때 인간의 삶은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진다.

교회는 인종적인 차이나,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계급과 신분을 넘어서서 종과 자유인이 한데 모여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는 곳이다. 성서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끼리끼리 모이는 집단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목회자들도 만찬가지이다. 큰 교회 목회자끼리, 같은 교단의 목회자끼리, 박사목사끼리, 정치꾼끼리 모이는 곳이 바로 오늘날 교회이다.

교회 안에서도 부자는 부자끼리, 가난한 자는 가난한자끼리 모여 반목과 갈등을 조장한다. 그렇다보니 오늘날 교회는 분명과 갈등으로 점철되고, 이웃교단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로 인한 소송사건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교회의 헌금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기보다도, 소송비용으로 새어 나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교회를 걱정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교회에 대해서 희망을 걸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친교를 나누는 사교집단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무식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교회에 나올 수 없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이들이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잊었다. 교회의 문턱은 높아져 세상 사람들이 교회의 문턱을 넘기에는 어려운 세태가 됐다. 교회는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사랑을 나누는 곳이다.

오늘 교회에 사랑이 넘친다고 말하는 이들은 없다. 평화와 생명도 없다. 서로 반목하며, 갈등을 조장하는 집단이 됐다. 한국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를 찾지 않는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있어야 할 종교는 인간에 의해 인간의 행복을 저버리게 만들었다. 예수님은 항상 소외된 자, 버림받은 자, 잃어버린 자를 찾아 나섰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더 크게 봤다. 

목자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가시덤불, 벼랑 끝을 헤매었다.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으면 어께에 메고 돌아와 기쁨의 잔치를 벌였다. 이것이 인간이 상상 할 수 없는 초월적인 사랑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계산을 하며,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또 채워진다는 계산을 한다.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시켜도 된다는 계산이다. 개인의 욕심이 채워지면, 자기 가정의 행복이 이뤄지면, 세상은 어찌 되어도 괜찮다는 생각뿐이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행동은 어리석게만 여겨질 것이다. 비합리적인 계산은 어리석지만. 이것은 초월적이면서,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예수님의 초월적인 사랑은 어리석지만, 하나님의 진리가 담겨져 있다. 잃어버린 자를 그대로 버려두고서는 인간은 인간이 될 수 없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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