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고 현 목사.
김 고 현 목사.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 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시 62:9) 아멘.

프랑스의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종교 사상가인 파스칼은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무엇인지 탐구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맹목적인 삶이다. 인간 <존재>에 대한 철 학이 인간고유의 진정한 연구이다”고 했다. 

늦은 오후, 한 청년이 공원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공원을 청소하던 관리인은 넋을 잃은 듯 앉아있는 청년이 조금 수상해서 말을 걸었다.
“이보시오, 젊은이. 당신 누구요?”
“글쎄요. 내가 누군지를 몰라서 생각하는 중 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관리인이 다시 청년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 집이 어디요 어디서 왔어요?”
“그것도 잘 몰라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관리인은 조금 강경한 어조로 청년에게 물었다.
“계속 여기 있을 거요? 어디 갈데 없어요?”
“글쎄요 그것을 알았으면, 벌써 여기를 떠나지 않았겠습니까?”

관리인은 엉뚱한 대답만 하는 청년이 더욱 수상하게 여겨졌지만, 청년은 관리인의 미심쩍은 표정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이 받았던 질문에 골몰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렇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청년은 근대 합리주의 철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1596~1650)였다.

그렇다. 방향이, 좀 다르기는 했지만, 공원 관리인이 대수롭지 않게 던진 이 질문 내용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가장, 심각하고도 중대한 물음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 일까? 하는 생각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번 쯤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 해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르네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 언어적 표현을 쉽게 이해하려면, ‘창세기’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처음 들었을때 모세는 그 음성이 누구의 음성인지 몰랐다. 그래서 한 질문이, “당신은 누구십니까”였다. 그때 하나님 은 모세에게 “I am”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 은 3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중의적 표현이다. 첫째,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 둘째, 나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셋째, 나는 나다가 그 뜻이다.

르네 데카르트는 이 성경 말씀의 중의적 표현을 응용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자신들의 <존재>가 이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유익하고,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한교연 총무협 회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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