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새로운 나라를 향한 예수운동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파라오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그리고 모세에게 억압과 착취가 없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라고 명 하셨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이 이야기는 구약성경 전체를 압도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파라오의 압제와 착취에서 해방시켰다는 신앙고백은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신앙고백이다. 이스라엘민족의 이 같은 신앙고백의 전통은 오늘까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일제는 한민족의 저항운동이 빠르게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구약성경을 보지 못하도록 훈령을 선교본부에 내려 보냈다. 총독부에 협조적이었던 선교사들 역시 구약성경을 본문으로 한 설교 및 성경공부를 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보니 선교사들은 구령사업과 교육사업에 치중 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선교사는 예수 믿고 천당 가라고 싸구려 복음, 성령을 강매했다. 오죽했으면 당시 미국장로교 해외총무였던 아서 브라운 목사가 한국교회를 순회하면서, “한국에 나와 있는 선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한국교회 교인들이 걱정 된다고 자신의 저서 극동의 지배에서 밝혔겠는가.

대한민국은 일제의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된 지 78, 기층민중과 기독농민, 기독여성, 학생들이 중심으로 일어난 3.1만세운동도 104년을 맞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한민족을 해방시켜 주면서, 압제와 수탈이 없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가 주었다. 헌데 이런 기회를 인간들은 저버렸다. 소유욕과 지배욕에 길들여진 인간들은 정의롭고, 평화로운 새로운 나라로 나가지 못했다. 미래에 대한 소망도 가져다가 주지를 못했다.

우리가 해방과 3.1만세운동을 미완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적대적 관계를 조성하며, 분단의 벽은 높아지고, 단절의 깊이는 더해가고 있다. 남과 북은 동족상잔의 비극도 겪었다. 오늘 대한민국은 이념갈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 중심에 교회가 있다는데 참담하다. 이스라엘 민족은 거대한 제국 이집트의 압제와 수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소유욕과 지배욕이 강한 기득권자들의 욕심 때문에, 앗시리아 제국과 바벨론 제국, 페르시아 제국, 로마제국 시리아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나라 잃은 백성이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들 나라에 짓눌리어 1천년 동안 나라를 잃고 신음하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를 갈망했다.

한국교회 일제의 수탈과 압제에 항거한 비폭력운동
3.1운동의 완성, 남과 북 통일된 나라를 세우는 것

용서 할 수 없는 나라 일본

이스라엘 민족은 인간을 믿지 못했다. 인간이 통치하는 나라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나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를 갈망했다. 로마치하에서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촉구했다.

결국 세례요한은 민중을 선동했다는 정치적 죄목으로 처형을 당했다. 이 땅의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던 독립운동가들 역시 일제에 의해 고난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특히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우상 천황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3.1만세운동,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들에게는 순교의 신앙이 강하게 배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부활했다는 믿음이 강했다. 그리고 담대하게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행동했다. 이런 점에서 3.1운동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장로교 보고에 의하면, 19193월부터 10월까지 장로교 교역자면 336명이 연행되었다. 남신도 2.125, 여신도 531명이 체포되었다. 1918년 장로교 목사가 169, 목사후보생 102명인 점을 감안하면, 장로교 지도층 인사 대부분이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때가 다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믿고 따랐다.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 새로운 나라운동은 가난한 민족, 고난당하는 민족이 억압과 수탈에서 벗어나 굶주림과 질병이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이루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운동이었다. 이를 믿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일제의 압제와 수탈에 항거했다. 알게 모르게 여러 모양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다. 모진 고문을 당하며, 피 흘리고, 죽어가면서도 나라를 찾으려고 했다. 오늘 일본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지 말라

일제에 맞서 싸우다가 고난당하며, 죽임을 당한 백성을 생각하면, 일본은 용서를 받을 수도, 용서 할 수도 없다. 오히려 이들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지금도 서슴지 않는다. 경제침략을 하며, 자신의 잘못을 회개 할 줄을 모른다. 용서를 빌지도 않는데, 피해자인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을 용서 할 수 있겠는가.

오늘 대한민국은 일부 정치인과 학자, 종교지도자들의 굴욕적인 발언과 행동을 보면, 강대국을 섬기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것은 교회도 다르지 않다. 연합단체는 부자교단, 부자교회만 보이고, 교인들은 부자교회만 섬긴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맘몬우상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민족의 희망이었던 교회,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어야 할 권력을 보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10년 전 오늘 일제의 총칼에 맞서 맨주먹으로 항거했던 한민족의 아픔을 몰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심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데 안타깝다. 강대국을 섬기는 행위는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자이다. 민족과 역사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분명 우상은 자신을 섬기는 자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몰각하지 않고서는 강대국을 섬기지 않는다. 우상 강대국은 우리 대한민국을 자유롭게 해 주지를 않는다. 오히려 대한민국을 구속하려고 달려든다. 미국은 대한민국 기업을 향해 영업비밀을 내 놓으라고 생떼를 쓴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싸우는 대한민국을 더욱 곤궁하게 만들었다.

양국 사이에서 중재자, 화해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미국의 태도를 보면, 한마디로 얄밉다. 우리는 구한말 일본에 조선침략의 빌미를 준 가스라-테프트 조약을 잊지 않는다. 수명을 다한 이씨조선은 강대국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에 끌려 다니다가 한반도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일본과 중국, 러시아는 패권전쟁을 자신들의 나라가 아닌 한반도에서 전개했다는 사실.

조선 왕조 후기 가렴주구를 일삼는 부정부패한 관리들과 허례허식을 일삼고, 명분만을 찾는 무능한 양반들은 암울하고, 절망적인 나라를 만들었다. 당시 가난한 국민들은 도탄에 빠지고, 반만년을 이어온 나라의 정기는 사라졌다. 희망이 없는 나라에 서양문물과 함께 들어온 기독교는 한민족에게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무력하고 수명을 다한 조선왕조에 기독교는 남녀평등, 사민평등의 사상을 내세워, 국민들에게 파고들었다.

3.1정신, 새로운 나라·세상의 이상

한마디로 당시 기독교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복음(기쁜소식=하나님의 참사랑)이었다. 하나님의 참사랑은 수명을 다한 이씨조선, 부정부패한 관리들과 무능한 양반들,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리던 일본 제국에 맞설 수 있는 강한 힘이었다. 소유욕과 지배욕이 강한 이들에 의해 고난을 당하던 가난한 백성들은 당시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새로운 힘이 필요했다. 이 때 한반도에 복음(기쁜소식)이 전해졌다. 복음은 피압박 민족에게 기쁜소식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이었다.

수명을 다한 이씨조선의 봉건왕조에 비하면, 기독교의 이념, 복음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이었다. 기독교는 대중 속으로 급속히 파고들었고, 문물의 이상을 추구하던 지식인들은 앞을 다투어 기독교를 신봉하고, 선교사들에게 협력했다. 이씨 왕조 봉건체제서 압제와 수탈을 당하던 민중들이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가 준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복음을 전해준 영국은 이미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을 거쳐 입헌국가를 수립했다. 프랑스도 시민혁명을 거쳐 봉건제도를 탈피하고 공화정을 수립했다. 공화정은 민주국가의 기본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자유와 민주를 강하게 외치면서도, 공화정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부도,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공화국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족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주었던 기독교, 교회가 오늘날 국민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것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예언자의 사명, 복음에서 크게 벗어났다. 모두가 소유욕과 지배욕에 갇혀 교회다운 교회,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을 만들어 냈다. 모두가 현재에 안주하며,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해방이후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새로운 나라에 대한 이상을 스스로 저버렸다.

3.1독립선언문에 담긴 새 나라에 대한 희망도, 교인들에게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산물인 돈(맘몬)에 갇혀, 하나님을 독점하려고 한다. 여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참사랑을 나누어주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3.1정신이며, 기독교,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기독교인들의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상이 ‘3.1독립선언서에 그대로 담겨 있다.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온다. (중략) 새봄이 온 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한다. 찬바람과 꽁꽁 언 얼음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이 지난 시대의 불길한 기운이었다면, 온화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으로 서로 통하는 것이 다가올 시대의 상서로운 기운이니, 하늘과 땅에 새 생명이 되살아나는 이때에 세계 변화의 도도한 물결에 올라 탄 우리에게는 주저하거나 거리낄 그 어떤 것도 없다. 우리는 우리가 본디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닌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 누리에 조선 민족의 우수함을 꽃피우리라

3.1만세운동은 비폭력 저항운동

당시 기독교인들은 주체적으로 3.1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개신교인들은 1년 동안 220여회에 걸쳐 한반도 전역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무능하고 부패했던 조선 왕조를 멸망시킨 것은 조선민중이 바라던 새로운 나라가 아니라, 일본 식민제국의 신민통치였다. 외세에 의해 그 못난 나라마저 잃고 이민족에게서 차별과 수탈을 받아야 했던 이 땅의 힘없는 백성들은 맨주먹으로 일제의 총칼에 맞서, 태극기를 흔들며 나라의 독립을 외쳤다.

한마디로 3.1운동은 비폭력 저항운동이다. 3.1운동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해 온 민족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민족은 맨몸과 맨손으로 일제의 총칼에 대항했다. 비록 몸은 망신창이 되어도, 정신적, 도덕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정신은 살아 100년 넘게 오늘을 살아가는 이 민족에게 살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 때 총과 칼을 휘둘렀던 군인과 경찰은 죽어 없어졌다. 아무도 이들을 찬양하지 않는다. 기념하는 이도 없다. 일본제국주의는 망했다. 우상 천황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패망 이전의 악령이 되살아나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회귀하고 있다. 일제 36년을 경험한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의 악을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맨몸으로 권력층과 로마 세력에 저항했다. 무기가 아닌 말을 가지고 싸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참사랑, 복음을 선포하고 말로 질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죄를 용서해 주었다. 바리새파 사람의 위선과 대사제들의 불의를 폭로했다. 로마 군병과 빌라도 총독 앞에서 말로 진리를 증거했다. 예수님은 아무 저항 없이 고난과 죽임을 당했다.

한신대학교 전 교수 박재순 목사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평화의 상징이며,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었다. 예수님은 삶과 죽음을 통해 하나님나라, 새로운 나라를 선포하고 실현했다면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통해 하나님나라, 새로운 나라가 도래 한다고 자신의 저서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1988년 도서출판 천지)에서 분명하게 밝혔다. 분명 3.1만세운동은 비폭력 저항운동이다,

미완의 3.1운동을 완성하는 것은 평화적인 남북통일을 이루고, 국민들의 윤택한 삶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꿈꾸고, 예수님이 선언한 하나님나라, 새로운 나라, 3.1운동에 참여한 한민족이 갈망한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을 가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고난과 죽음을 무릅써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부활 하셨기 때문에 이 길을 갈 수 있다. 십자가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한반도의 평화,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완성하는 것이, 미완의 3.1운동, 미완의 해방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새로운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을 통해, 우리의 믿음과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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