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인사

살기 어려운 시절 추운 겨울에
밥 얻어먹으러 다니는 거지가 많았다

어머니께서 부엌으로 불러
아궁이 불을 앞으로 당겨 놓고
밥상을 차려 주시곤 했다

빈속으로 다니면 더 춥고
자녀들에게 밥도 더 갖다 줄 수
있다고 하셨다

길손이 물 한 그릇 얻어 먹자고 하면
쟁반에 받쳐 대접하듯이
물을 건네주셨다

그때는 몰랐는데
어머님의 정성으로 보이지 않는 손길이
복이 되어 오늘을 살아간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늦게 인사를 올립니다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살면서 아무리 되풀이해도 좋은 말이 있다면“감사”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 말은 사용하면 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에너지를 얻어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슬퍼도 감사, 아파도 감사, 화가 나도 감사하는 마음이라면 무척 행복한 사람이다. 찬송가 중에“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 가시 감사”라는 가사가 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꽃에 감사하는 마음은 누구나 지닐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찔릴 수 있는 날카로운 가시에 감사하다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다. 믿음의 능력이 아니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마음이다. 

이 시는“늦은 인사”라는 제목으로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혹 빠른 인사가 있을까 궁금해진다. 시의 본문을 읽어 보니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시적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시적 화자는 자신이 부모가 되어 살아가면서 어렸을 적 어머니의 모습을 상기한다.“밥 얻어먹으러 다니는 거지가 많았다”는 걸 보면 상당히 오래전의 일임을 짐작하게 된다. 필자도 어린 시절 동냥 다니던 거지를 종종 보곤 했다. 누추한 차림에 깡통을 차고 다니던 모습이 선하다. 그때는 대부분 대문을 열어 놓고 살았기 때문에 나환자, 상이군인, 거지들이 불쑥 집안으로 들어 오곤 했다.  

시적 화자의 어머니는 추운 겨울 거지를“부엌으로 불러/아궁이 불을 앞으로 당겨 놓고/밥상을 차려 주시곤 했다”고 하니 참 따뜻한 분이셨다. 거지를 부엌으로 불러 밥상을 차려 주시다니 은혜가 밀려온다. 더욱이 거지의 자녀들까지 살갑게 챙겨 주셨으니 긍휼함이 차고도 넘친다. 목마른 길손에게 물 한 잔도“쟁반에 받쳐 대접하듯이”하셨다는 대목에서 진정한 섬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시적 화자는 당시엔 어머니의 깊은 뜻을 미처 알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 속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는 거다. 

 관 두껑 덮을 때까지 철이 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예전에 철부지였던 시적 화자는 늦었지만 어머니의 크신 사랑 덕분에“복이 되어 오늘을 살아간다”라고 토로한다. 유대인들조차 개돼지로 취급하던 사마리아 여인을 의도적으로 찾아가셨던 예수님이 떠 오른다. 그녀와의 독대를 위해 제자들까지 자리를 피하게 하셨던 예수님의 손길이 뇌리를 스친다. 이토록 가난한 자, 목마른 자를 지극 정성으로 섬기셨던 어머니를 둔 시적 화자는 행복한 사람이다. 점점 사람다운 온기가 사라져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때 사람의 향기 그득한 시를 읽으며 감사를 배우게 된다.       

백석대 교수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