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기독교 전례에서 고난주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한국교회는 성금요일만 기념하지만 세족 목요일, 나사로 토요일 등도 중요한 기념일로 지킨다. 중세 교황청 시스티나 채플에서는 고난 주간의 수요일과 금요일 새벽 3시 조과(matins)를 특별하게 드렸다. 곧 예배의 진행에 따라 27개의 촛불을 하나씩 소등하여 점차 어두워지는 테네브레(Tenebrae) 미사다. 마지막 촛불이 꺼지면 교황은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성가곡 미제레레(Miserere mei, Deus)를 참석자들과 함께 듣는다. 그 뜻은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라틴어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 1582?-1652)는 사제이며 작곡가로서 교황청 합창단에 발탁되어 1638년 미제레레를 작곡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교황 우르바노스 8세는 거룩한 선율에 감동을 받아 오직 고난 주간 시스티나 성당에서만 연주하게 제한하였고 교황청 밖으로 악보의 유출 또한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악보를 복사하거나 일부라도 빼돌리면 파문에 처해졌다. 전설은 또 다른 소문을 낳게 마련이다. 열네 살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함께 유럽을 순례하던 중 부활절을 앞둔 1770년 4월 7일 수요일 새벽 테네브레 미사에 참여한다. 전설적인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경청한 천재 소년 모차르트는 그 곡을 그대로 복기(復棋)하듯 채보하여 오스트리아로 돌아갔으며, 이듬해 1771년 공개함으로써 미제레레의 봉인이 해제되었다고 한다.  

시편 51은 감동적인 참회시다. 카시오도루스(485–585)가 <시편해설>(Expositio Specorum)에서 일곱 시편을 참회시라 칭하였고(시 6, 32, 38, 51, 102, 130, 143), 교황 인노첸시오 3세(1161-1216)는 사순절과 고난 주간에 묵상할 본문으로 지정하였다. 참회시는 사순절의 경건과 훈련에 중요한 텍스트로서 죄의 고백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며 부활을 준비하게 한다. 시편 51은 죄의 고백(1-6절), 용서의 기도(7-13절), 찬양과 서원(14-19절)으로 구성되었다. 시편 51을 천천히 읽으면 뜻밖의 3, 3, 3을 만난다. 다시 말해서 3 가지 죄(sin)와 3 영(spirit), 그리고 3 가지 신명(delight)이 그것이다. 우선 1-5절에 여러 차례 언급되는 ‘죄악’(페샤) 과, ‘죄’(아본)와, ‘죄과’(하타트)는 번역이 일관되지 않아 식별하기 어렵다. <개역개정>의 경우 페샤는 ‘죄악’(1절)과 ‘죄과’(3절), 아본은 ‘죄악’(2,5절), 하타트는 ‘죄’(2,3,5절)와 ‘범죄’(4절) 등으로 어지럽다. 구약에서 세 낱말은 하나님께 저지른 잘못을 뜻하는 개념으로 널리 쓰인다. 이렇듯 죄와 관련된 낱말을 모두 나열한 데서 시인의 진솔한 고백이 느껴진다. 더구나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죄를 회개한다(17절). 

두 번째 3은 시인의 죄가 정결케 되었을 때 누릴 기쁨으로 역시 세 동사로 표현된다(8절). 곧 ‘즐겁고, 기쁘며, 신난’ 모습이다. 일시적인 안도가 아니다. 물론 아직 실현되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백성이 맛볼 신명이며(시 105:43) 율법으로 인한 기쁨이고(시 119:111) 장차 누릴 종말론적 즐거움이다(사 35:1). 여기서 놀라운 점은 하나님이 베푸실 죄의 용서가 세상을 지으신 창조와 평행된다는 시인의 성찰과 신학적 인식이다. 즉 그는 ‘정한 마음’을 창조하라는 명령(?)을 하나님께 용감히 요청한다(10절). 마음의 정결을 위한 세 ‘영’이 나란히 등장한다. 마치 태초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듯(창 1:2; 시 104:30) 죄를 사하는 과정에 견실한 영, 거룩한 영, 자원의 영이 잇달아 나온 것이다(10-12절). 시인에게 용서는 놀랍게도 창조(ארב)의 또 다른 면모로서(10절) 지속 가능한 창조의 일환(一環)이다. 세 ‘영’은 하나님을 도와 시인을 죄에서 돌이키게 하고 더 나아가 죄악과 죄과를 말갛고 깨끗하게 씻어내는 이른 바 재창조케 한다. 

이렇듯 세 가지 ‘죄’는 세 영과 연관되어 새롭게, 거룩하게, 자발적인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며, 마침내 시인이 용서 후에 누리게 될 세 가지 즐거움과 맞물린다. 시편 51의 3 죄, 3 신, 3 영에 지나친 의미부여는 금물이다. 왜냐하면 동어반복을 줄이면서 시인의 모든 죄를 보여주고, 사면 후 맛볼 수 있는 하늘의 기쁨을 열거하며, 용서와 창조를 가능케 하는 원천임을 알려주는 수사법이기 때문이다. 성금요일 새벽에 열리는 기도회(Lauds)는 어둠을 밝히는 27개의 촛불을 하나씩 꺼지면서 진행된다. 참석자들은 이 과정을 따라 모든 죄악과 죄와 죄과를 고백하고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 곧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외친다. 마치 혼돈과 공허에서 창조의 맑고 푸른 하늘이 나타나듯 알레그리의 성가곡 미제레레는 무겁게 짓누르던 죄책감을 가슴 벅찬 기쁨으로 승화시킨다. 미제레레의 신성한 선율이 제단과 성전을 가득 채울 때 시인에게 즐겁고 기쁜 신명이 북받쳐 오른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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