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자에게 물 한 잔을 대접하라

222일부터 시작된 사순절이 2주를 지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순절기간만이라도, 대지진으로 고난당하는 튀르키예 국민과 시리아 국민, 전쟁으로 고난당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위해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순절을 맞은 인간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며, 고난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고, 위로하며, 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해야 한다.

눈물 흘리는 자, 고난당하는 자를 그대로 두고 우리는 하나님나라에 참여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 구원을 받는다. 성서는 물 한잔을 갈급해 하는 자에게 물 한잔을 대접하는 것을 하나님나라, 구원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귀가 따갑도록 교육받은 이야기이다. 오늘 전쟁과 대지진으로 슬피 우는 자, 고난당하는 자를 외면하는 자는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 할 자격조차 없다.

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신화석 목사)는 규모 7.8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고난당하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민과 함께하기 위해 사순절기간 40일 정오기도회를 드리기로 했다. 또한 지진교회를 설립하기로 하는 한편, 조직적으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주민희망봉사단(단장=이재희 목사)를 구성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담임=이영훈 목사)도 튀르키예 국민들을 위해 10억원을 내놓았다.

이밖에도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송태섭목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정서영 목사),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이영훈 목사) 등 연합단체와 교단들도, 일제히 위로의 성명을 내고,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특히 한교연은 사순절 전날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 찾아 연탄 35천장과 백미, 라면 등을 전달하고, 사랑의 온정을 나누었다. 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박진탁 목사)도 사순절기간 사랑의 헌혈운동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한국교회를 향해 호소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한국교회의 이런 모습은 보잘 것 없는 이웃, 고난당하는 이웃, 눈물 흘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위로하며,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인정이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한국교회에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의미가 크다.

인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창조
사순절 절제된 삶과 경건한 삶 살도록 인간 모두가 노력해야

하나님의 참사랑 실현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자

복음, 하나님의 참사랑에 관한 기쁜 소식

인간은 자기 안에 중심을 두고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중심으로 살도록 창조되었다.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일부인간은 자기 안에 중심을 두고, 자기 안에 갇혀서 살아간다. 그것은 인간 모두가 탐욕과 욕망, 소유욕과 지배욕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사순절 기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한다면서도, 십자가의 고난에 역행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모두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갇혀 절제되지 않은 삶, 겸손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우는 자를 외면하면서, 금식은 왜 하는지를 모른다. 40일 금식기도, 40일 작정기도, 90일 작정기도, 천일작정기도를 한다고 자랑한다. 이는 분명 행동하는 믿음이 아니다. 외식하는 자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참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실현한 하나님의 참사랑에 관한 기쁜 소식이다. 참사랑을 실현하지 않고서는 기쁜 소식을 전 할 수가 없다. 기쁜 소식을 전한다고 하더라도, 전혀 감동이 없다. 성령이 나의 마음에서 너의 마음으로 흐르지 않는다. 성령은 나의 마음에서 너와 그의 마음으로 흘러야 오염되지 않는다.

복음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주인으로 삼는 나라,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하나님의 아가페가 지배하는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이다. 복음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참사랑, 기쁜 소식이다. 사순절 모두가 절제된 삶 속에서 겸손하게 생활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교회의 지도자라는 목회자들은 예수님의 삶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는데 안타깝다. 재정을 아껴서 지진과 전쟁으로 고난당하는 이웃에게 보내자.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이들은 자신만은 거룩하다고 말한다. 하나님 중심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다고 말한다. 위선적인 율법학자와 바리새인, 정치지도자들과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예수님을 팔아 장사하는 장사꾼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모른다. 이들은 한 인간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참사랑에 담긴 뜻을 모른다. 사순절 그리스도인들은 튀르키예와 시리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복음(기쁜소식)이다는 것을 깨닫자.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주인으로 삼은 나라

세상의 어떤 혁명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사랑 없이 완성될 수 없다는 성서의 진리를 망각했다. 이제라도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이념과 갈등을 넘어 그리스도의 참사랑 안에서 평화의 시대, 생명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하나님의 세상을 열어야 한다. 특히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민족분열과 교회분열의 중심에 있었던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서만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래, 통합의 시대, 하나님나라가 열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복음의 핵심은 아가페이다. 인간의 욕망과 갈등으로 가득 찬 목회자와 그리스도인, 정치인이 존속하는 한 하나님나라는 실현되지 않는다. 미래로 나갈 수 없다. 통합의 시대도 없다. 사순절에 그리스도인 모두가 가던 길을 멈추고 생각해야 할 일이다. 자기중심에서 혼자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한, 하나님의 나라, 새로운 세상은 열리지 않는다. 미래는 없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대지진과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통당하는 세계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위로하며, 봉사해야 한다.

하나님의 참사랑(복음)을 실현해야 할 교회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살기 위해 노동현장에 나가 주검으로 돌아오는 노동자, 전쟁의 참화 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세계민족, 대진으로 고난당하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민을 외면하고서는 하나님나라에 참여할 수 없다. 사순절을 경건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겠다고 말하면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을 살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욕심과 이기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 정치인들과 무엇이 다른가.

이것은 행동하지 않는 믿음이다. 인간 모두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스스로 저버리고 있다. 모두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굳어져 버렸다. 나의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드리지 못한다. 너를 통해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망각했다. 관계는 서로 자신을 열 때 성립된다. 서로 자신을 여는 행위는 사랑이다. 나를 너에게 내주는 행위이다. 이것은 나의 존재를 거는 용기이며, 모험이다. 나의 존재를 걸고 살 때만이 삶의 기쁨, 생명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복음의 핵심은 아가페다

헌데 그리스도인들은 소유욕과 지배욕에 갇혀 이런 삶의 기쁨을 잃어버렸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 모두는 죽음의 역사, 악의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3년간 계속된 코로나19는 세계민족을 매우 힘들게 만들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지진은 6만 명에 가까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또 여진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세계민족을 지진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1년 넘게 전쟁의 참화 속에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평화를 깨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죽음의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민간인 희생자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전쟁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사람도 헤아릴 수 없다. 러시아군은 40년 전에 원전사고가 일어난 체르노빌에 진지를 구축했다. 방사능 오염이 노출되면서 러시아 젊은 군인은 혼비백산했다.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푸틴의 전쟁 광기는 어디까지인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폐기물에 문제가 없다며,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겠다고 한다. 이미 이웃나라 몰래 버리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와 친일적인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원전폐기물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보전을 외친다. 모두가 이중적인 모습이다. 자신의 편리에 따라 하나님을 악용한다. 하나님의 참사랑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를 포기했다.

참사랑을 실현할 때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성경은, 인생의 참 목적은 사랑이라고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 모두는 자기 안에 갇혀 산다. 이러한 삶은 이웃을 죽음으로 내몬다. 이웃의 아픔을 모르고, 혼자만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오늘날 모든 악의 근원은 하나님 중심의 삶에서 이탈하면서 발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절제된 삶을 사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시작됐다

그리스도인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들은 전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교육했다. 나 자신을 부인하는 실존적 행위는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사단법인 지구촌선교회는 사순절 메시지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버림받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지진과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난당하는 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이다. 이들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들에게 복음(하나님나라=기쁜소식)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의 자리, 처형의 자리에서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하고 부르짖으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며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했다, 사순절을 경건하고, 절제된 삶속에서 보낼 것을 호소했다.

예수님의 이 절규는 이 메시지가 밝혔듯이 역사와 사회를 지배하는 죽음의 세력에 대한 항거이며, 부르짖음이다. 그것은 또 죽음의 세력을 깨뜨리고 사랑과 생명을 주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절규이며, 호소이다. 또한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열어 가는 우리를 향한 절규이며, 호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에로 나갈 때 우리에게 해방과 구원, 생명의 길이 열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절규와 외침을 외면하는 사람에게는 구원도, 해방도, 새 삶도, 새로운 나라도, 새로운 미래도, 하나님나라도 없다. 이들은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못한다. 자기 안에 갇혀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탐욕과 욕망에 가득한 인간이다. 사순절,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묵묵히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경건하고, 겸손하게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다. 그래야만 예수님의 해방과 구원, 새 생명의 길에 참여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서의 진리를 망각하고, 율법학자, 대제사장, 바리세인, 정치인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서, 예수님의 삶의 현장의 가난하고 소외된 보잘 것 없는 사람,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이용하기에 바빴다. 예수님은 이들에 대해서 크게 노하셨다.

십자가에로 나갈 때 구원의 길 열린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하늘나라의 문을 닫아놓고는 사람들을 가로막아 서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못 들어가게 한다.(중략)/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 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공동번역 성서 마태복음 2313-22)

예수님도 수시로 분노하셨다. 율법학자와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을 철저하게 악용했다. 한마디로 외식하는 자이며, 위선자였다. 폭력을 일삼았다. 약한 사람, 보잘 것 없는 사람을 희생재물로 삼았다. 악행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죄를 남에게 뒤집어 씌웠다. 자기 변명하기에 바빴다. 이들은 악을 분별 할 줄을 몰랐다. 편 가르기에 앞장섰다. 바리새파는 사두개인과 손을 잡고 뒷거래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했다.

여기에 예수님이 분노한 것이다. 누구나 불의에 집착하면, 자신의 잘못은 보이지를 않는다.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평화를 사랑하지도 않는다. 로마 팍스, 러시아 팍스, 자이나 팍스, 아메리카 팍스를 찬양한다. 힘 있는 자들은 예수님의 평화, 샬롬은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이다. 말로는 예수님의 샬롬을 말하는 것 같지만,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가 보면, 목회자와 교인들은 힘에 의한 평화를 노래하며,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외면한다. 이들은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긴다.

오늘 세계는 힘 있는 지도자들에 의해 평화가 깨지고 있다. 지도자를 잘못만나 국민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다. 사순절,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에 예수님의 참사랑과 참 평화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기가 힘들다. 신종바이러스감염증의 후유증과 대지진, 전쟁으로 세계민족 모두가 힘들어 하고 있다. 대지진과 전쟁의 참화 속에 있는 민족, 먹을 것이 없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남반부의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하늘을 향해 호소한다. 그러나 강대국의 지도자들은 귀가 막혀 이들의 호소를 듣지 못한다. 이들의 호소가 하늘을 향한 호소라는 것을 잊었다. 오히려 전쟁을 부추기며, 이들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악용한다.

위선적인 정치지도자는 되지 말자

3.1만세운동 104주년을 맞았다. 3.1만세운동은 피압박민족의 비폭력 평화운동이며, 대한독립운동이다. 자유를 갈망한 한민족의 해방운동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용서를 빌지 않는 일본은 용서 할 수도, 용서해서도 안된다. 우리의 거리에는 여전히 일본차가 질주를 한다. 누구 하나 제재를 가하는 사람 없다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제국주의라는 강도를 만나 36년 동안 고난을 당한 민족이다. 이런 고난의 아픔을 잊고, 일본을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라고 말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백주대낮에 서울의 한복판에서 일본천황의 생일잔치가 벌어지고, 여기에서 일본국가 기미가요가 불려지는 상황에서, 3.1104주년을 맞은 31일 세종시 한 아파트에 일장기가 걸렸다. 그것도 목사가 내걸었다는데 안타깝다. 이 목사는 3.1운동이 기독농민, 기독여성, 학생 등 기층민중에 의해서 일어났다는 것을 몰각하지 않고서는 매국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

이 목사의 행동은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인 애국지사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벌인 국민들을 슬프게 만든다. 이 목사의 행동은 한마디로 민족의 자존심마저도 구겨버리는 민족과 역사 앞에 큰 범죄를 저질렀다.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다. 또한 역사를 왜곡하며,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긴다. 이런 일본과 이웃국가로 평화롭게 살 수 있겠는가.

민족의 자존심을 구겨버리는 정치지도자와 학자, 목사들을 보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대제사장과 율법학자,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가난한 사람들의 등을 처먹는 부호. 권력에 빌이 붙어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관리들과 비교된다. 사실 수명을 다한 이씨 왕조 말, 왕을 둘러싸고 있던 지도권 이사들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 넘겼다.

한마디로 가진자와 권력자들은 더 큰 권력으로 옮겨가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나라를 지키겠다며, 나선 사람은 힘없는 국민이었다. 이들은 보잘 것 없는 무기와 맨몸으로, 현대무기로 무장한 일본제국주의에 맞섰다. 예수님시대나, 근대나, 오늘날이나 힘을 가진 율법학자, 대사제, 정치인들은 한마디로 법을 내세워 보잘 것 없는 백성 위에 군림했다. 이들은 이단보다도 못한 인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들의 잘못을 비판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했다. 그들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분명 부자들을 향한, 아니 기득권을 가진 자들을 향한 경고였다. 한마디로 로마의 식민체제 아래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구체적인 응답이었다. 사순절 그리스도인 모두는 우상 천황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굻는다는 것을 깨닫고,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자.

한국교회는 일본의 우상 앞에 무릎을 꿇은 아픈 상처가 있다. 한국교회는 우상 천황을 섬기는 신사참배를 결의함으로써 하나님을 배교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분명한 것은 일본 사람도 하나님나라에 하께 가야 할 이웃이다. 또한 북한민족 역시 남한민족과 함께 하나님나라에 가야 할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은 대한민국의 하나님이며, 북한민족과 세계민족의 하나님이다. 한국교회가 한반도의 평화를 노래하며, 북한선교에 모든 힘을 쏟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지 말자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칭찬하면, 화가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시작됐다. 이제라도 정치지도자, 교회지도자, 국민 모두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 회개는 자기방어기제를 스스로 해체하는 것이다. 자기 잘못을 하나님께 노출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 그리스도인은 더욱 그렇다. 인간은 자기결핍에 빠져있다. 부끄러운 일들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모두 가기 안에 갇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다. 인간은 왜 죄인인가(?) 사랑해야 할 이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죄인이다.

인간은 항상 칭찬 위에 서 있고, 칭찬받기를 원한다. 김모 목사는 대통령을 위해 특별집회를 가지면서, “예수님도 죄 없이 고난 당하셨다고 말하며, 위로했다고 한다. 그는 세상의 위선자들로부터 고난을 당하는 약자, 강한 자에 의해서 핍박당하는 약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회 한번 열지 않았다. 이들은 성품은 온화하다. 항상 진실하다. 김 목사는 군사독재정권을 비롯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역했다. 피 묻은 손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해 주는 잘못도 범했다.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들은 한마디로 한심하다. 부끄러워 할 줄을 모른다. 친일사관에서 국정교과서를 만든 인간을 중용하는가 하면, 철학자 김모 교수는 어느 대통령 후보를 향해 이 후보가 자기 집을 찾아 온 것은 하늘이 점지해 준 것이다고 말했다. 또 잔 대통령을 향해 이 대통령이 다시 태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굿을 하는 사람이 말하듯이 하는 이들은 모두 지식인이다. 이들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다. 이들을 향해 이사야는 말한다.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1)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을 의지하니/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이사야 308-14)

이사야는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라고 한다. 유익한 말을 그만 하라고 한다. 간사한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이들은 나라와 민족에게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도망 갈 인간들이다. 이들로 인해 인간의 영혼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 국가가 무너진다. 인간은 무섭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이 땅의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 지식인들이 제국주의 몰락과 함께 무너지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은 똑똑히 보았다.

성서 요한계시록 3장은 이들을 향해 생각하라. 깨어라.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것이 살아있는 믿음이며, 참 그리스도인이다. 사순절,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에 그리스도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 회색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중단해야 한다. 선과 악을 구별 할 줄 알아야 한다. 최소한 율법학자나, 바리새인처럼 위선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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