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목사.
이재희 목사.

예수님의 앞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 해결과 병 고침을 받기 위하여 모여 있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고 난 후에 또 무리들을 불쌍히 여겨 사랑을 베푸는 사역이 끝나면 그 사역의 자리를 피하셨다. 이유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 보이지 않기 위함이었다. 11절을 보면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님을 보면 그 앞에 엎드려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인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나타내 보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세에서부터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거라는 걸 선지자들의 예언된 말씀을 믿고 사모하며 자신들을 해방할 능력의 메시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하나님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심이 알려지면 백성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게 되고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죽이려 하지 않음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사라져버리게 되기 때문에 때가 올 때까지 예수님은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숨으셨던 것이다. 지금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든 뒤로 물러서야 할 때는 물러서고 자기 자신을 나타내지 말아야 될 때는 조용히 있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겸손함을 가지고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협력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예수님의 사람인 우리가 주님 보좌 앞에 가기를 원한다면 먼저 낮은 자가 되어야 되어야 한다. 초림 예수는 갈보리 십자가 죽으시기 위하여 낮은 인성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많은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고통과 병을 고쳐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복음을 전하시며 율법을 가르치셨다. 이 시대의 우리도 이런 주님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에도 신유가 나타나야 하고 교회가 마음과 정신과 육신의 병, 이 모든 것들을 치료하여 주고 회복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예수를 닮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어 목숨까지 아낌없이 버리고 십자가의 사랑을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내 가슴속에 심어야 한다. 그리하여 바로 내 옆에 있는 성도부터 사랑하고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고 나보다 남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겸손한 신앙의 미덕을 소유해야 한다.

예수님은 33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면서 많은 표적과 이적을 통하여 사랑을 전하셨고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사망의 무덤에서 생명으로 부활시키기 위함이다. 예수를 믿으면 영생하며 구원을 받고 얽매였던 율법에서 풀어나고 진정한 자유가 있음을 알게 하심이다. 이것만이 주님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이 소망이 바로 내 소망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이 짧은 인생을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 주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잘했다 칭찬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25:35~36)라는 말씀이 지금 교회와 우리를 향하신 것이다. 우리가 살아도 무슨 일을 해도 목적은 예수님을 닮은 삶이어야 한다. 내 인생 제일의 목적은 나의 개인적인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이 삶의 목적만이 행복이 되며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 길이다. 우리가 죽어 주님 앞에 갔을 때에 면류관 받고 칭찬받고 충성된 증인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자기를 나타내지 아니하고 사랑의 봉사를 하며 희생함으로 남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삶이야말로 예수를 닮은 참된 삶이다. 예수님을 닮은 삶이 여러분 삶의 목적이 되어 실천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인생의 최고의 행복, 최고의 복을 누리고 주님께 최고의 칭찬을 받는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리고 온전히 소유하게 되기를 진정으로 소망한다.

분당횃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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