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천황,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다

2천년 동안의 세계교회사를 보면, 교회와 정치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교회는 권력에 붙어 철저하게 이용했고, 권력도 교회를 철저하게 악용했다. 한국교회 역시 선교초기부터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권력의 시녀노릇을 했다. 권력 역시 교회를 권력유지의 방편으로 삼았다. 한마디로 권력과 교회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였다. 대부분의 교회는 잘못된 권력에 대해서 예언자적인 사명에 충실하지 못했다. 그것은 진보적인 교회나, 보수적인 교회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와중에서도, 권력을 향해 쓴 소리를 내뱉은 목회자들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3.1운동 104주년을 맞았다. 31일은 사순절 기간이다. 여기에다 올해는 3.1운동 4년 뒤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은 1919년 거국적인 3.1 독립운동으로 조선의 독립운동의 기세에 크게 놀랐다. 일본은 대지진이 일어나자 의도적으로 조선인에 대한 적대감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유언비어 유포, 조선인 폭동 등의 오보를 유포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직접 학살하거나, 성난 일본 군중의 조선인 무차별 학살을 유도한 책임을 철저하게 은폐해 왔다. 심지어 조선인 임신부의 성기에 말뚝을 박는 등의 악행을 저질렀다. 일본은 용서 할 수도, 용서받을 수도 없다. 윤대통령의 일본외교해법과 일본방문에 대해서 비난받는 이유이다.

이런 과거 고난의 역사를 망각하고서는 미래로 나갈 수 없다. 한국교회가 자기십자가를 지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이 땅의 독립운동가들의 뜻과 학살당한 조선인의 아픔을 몰각하고, 우리정부의 잘못된 대일외교정책에 춤을 추는 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는 일제하에서 고난당한 한민족의 아픔을 몰각한 것이며, 한국교회가 성경의 진리에서 이탈한 것이다. 예언자 전통에 따르면, 예언자들은 잘못된 권력을 향해 과감하게 소리쳤다.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지금까지 권력에 빌어 붙어 민족이 가야 할 길을 방해만 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걱정을 듣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는 슬피 우는 자, 고난당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이들을 핍박하는 권력을 향해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그래야만 고달픈 민족에게 작은 희망을 가져다가 줄 수 있다. 그리고 미래로 나갈 수 있다.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할 수 없다.

3.1만세운동 104주년과 조선인 학살 관동대지진 100년, 사순절기간에 나온 대통령의 한일외교해법을 둘러싸고 피해자의 의견을 무시한 해법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이런 가운데 권력의 주변을 맴도는 한국교회 연합단체가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외교해법 지지성명을 내는 것에 대해 예언자적인 전통을 상실한 처사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사진은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3.1운동, 관동대지진학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강제동원 굴욕해법 무효를 주장하는 시민들)
3.1만세운동 104주년과 조선인 학살 관동대지진 100년, 사순절기간에 나온 대통령의 한일외교해법을 둘러싸고 피해자의 의견을 무시한 해법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이런 가운데 권력의 주변을 맴도는 한국교회 연합단체가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외교해법 지지성명을 내는 것에 대해 예언자적인 전통을 상실한 처사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사진은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3.1운동, 관동대지진학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강제동원 굴욕해법 무효를 주장하는 시민들)

예언자적전통을 상실한 한국교회 권력과 함께 춤을 춘다
일제하 피해자의견 무시된 대일해법 미래로 나갈 수 없다

고난당하는 민족과 유리된 한국교회

한국교회는 선교이후 지금까지 고난당하는 한민족과 유리되어 있었고, 유리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슬프다. 한국교회는 우상 천황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진리를 잃어버리고,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신사를 참배하는 배교를 서슴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이며,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뿌리 채 흔들어 놓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이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자이며,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은 한민족과 역사 앞에 큰 죄인이다.

그러고서도 한국교회는 신사참배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를 않는다. 신사참배 이후 한국교회는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는 일을 마다하지를 않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을 두려워하며, 맹종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교회가 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굴종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교회 안에서 권력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었던 성경 로마서 131-7절의 말씀을 보면, 그것은 극명해진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이 성경구절을 내세워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은 무조건 대놓고 권력을 비호하며, 목회자가 감당해야 할 예언자적인 사명을 망각하고 있다. 오히려 권력에 대하여 비판하는 교회지도자들을 정치목사’, ‘좌파’, ‘빨갱이로 매도한다. 고난당한 민족의 정당성을 주장하다가 정치목사가 된 이들이 적지 않다. 권력의 주변을 맴돈 목회자와 교인들은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 이들이 바로 피 묻은 손에 기도를 해준 정치목사이며, 하나님 앞에 범죄자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권력을 향해 해야 할 말을 왜 하지를 못하는가(?) 그것은 교회가 권력의 주변에서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3.1104주년을 맞아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굴종적인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는데도, 교회는 이를 지지하는 성명서나 발표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이는 3.1정신을 망각한 행위이다. 3.1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이다. 이들은 조선인과 동일시한 일본인 가네코 후미꼬 보다도 못한 한국인이다. 공의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도 모른다. 예수님의 샬롬(평화)도 모른다. 힘에 의한 평화, 로마 팍스, 아메리카 팍스를 외치는 반평화주의자이다.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한국교회

분명 윤 대통령의 일본을 향한 외교정책은 일제하에서 고난당한 한민족의 아픔을 몰각한 행동이며, 3.1만세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한국교회사를 부정하는 것이라는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윤 대통령의 대일외교정책에 반기를 들고,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는 여야 정쟁의 원인이 되었다. 문제는 한국교회의 행동이다. 3.1만세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잃어버린 종교단체가 되어버렸다. 하나님 앞에, 민족과 교회 앞에 큰 죄인이 되어버렸다.

서울대학교민주화교수협의회(민교협)를 비롯한 87개 대학 학생회, 710여개에 달하는 시민단체, 강제징용피해자단체, 진보정당 등은 윤석열 정부는 굴욕적이고 위험한 강제동원 판결 해법을 철회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거리로 나왔다. 이밖의 단체들도 “(정부의 해법은) 삼권분립의 원칙 등 헌법적 질서에 대한 존중과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일방적인 해법이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부가 해법안을 통해 일본에 얻어낸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들은 윤 대통령의 16일과 17일 일본방문에 관심이 집중됐다.

분명한 것은 일본은 제대로 된 사과나 정책적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 외무상 하야시 요시마사는 강제동원은 없었다. 이미 끝난 일이다고 말해, 우리 정부의 일본외교정책을 우습게 만들었다. 민교협의 성명서는 정부의 해법은 일본의 건강한 시민사회를 외면하고 극우세력과 극우 정치권의 입장에 투항하는 일이다. 북한과 미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확산하고 있는 군사적 긴장을 부추기게 된다. ··일 군사 협력 가속화는 결국 국가의 자주성을 훼손할 것이다고 맹비난했다.

일제하에서 위안부로 끌려가 시궁창보다도 못한 삶을 산 소녀들, 노동자들, 일본군에 끌려간 학도병, 이들을 위해서 장독대에 물 한잔을 떠놓고 무사귀한을 빌었던 어머니들의 아픔을 뒤로하고, 한국교회는 권력의 시녀로서, 반성 없는 일본과 무조건 협상하려는 정부를 비호하며, 이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이 땅의 독립을 위해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었던 대한민국의 아버지와 아들, 무명 흰옷고름 입에 물고, 검정치마바람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이 땅의 어머니들을 욕되게 하고 있다. 이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새로운 세상,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정부는 한국 기업의 기부금으로 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대법원판결 배상금·지연이자를 지급하는 ‘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이 변제 안은 일제하에서 고난당한 한민족, 대한독립을 외쳤던 이 땅의 가난한 민중들을 슬프게 만든다.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외교정책에 대해 교인들과 상관없이 목사 몇 명에 의해서 이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는데 한심하기 그지없다. 몇 명 목회자의 이 같은 행동은 역사 앞에, 민족 앞에,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는 결과를 낳았다.

피해자지원단체는 대통령의 대일정책에 대해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해법이라고 맹비난 반발하고 나섰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고 물었다. “나라가 주는 보상금을 받지 않겠다고도 했다. 시민단체들은 기시다 총리의 독도문제와 위안부 문제 언급 인본언론에 대해서 분로했다. 우리정부는 이 같은 일본 언론의 보도에 대해 어정쩡한 보도만 내 놓아 의혹만 더 키우고 있다.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해법

지난 13일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 3명은 재단에 정부 해법안에 대한 거부 의사를 담은 내용증명을 보냈다. 국회에 참석해 증언도 했다. 성경은 우는 자에게 물 한잔을 대접하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기준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우는 자의 눈물을 닦아 줄 줄을 모른다. 대신 교인들에게 예수 믿고 천당 가라고 싸구려 복음을 증거 하는데 경쟁을 벌인다. 교회가 정치와 경제에 끌려 다닌다는 얘기다.

그리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여기에다 종교의 마지막 보루인 양심마저 돈과 권력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3.1만세운동이 기독교운동이라고 자랑하기에 바쁘다. 민족대표 33인 중 16인이 기독인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이들에게는 3.1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기독여성, 기독농민, 학생 등 기층민중은 안중에도 없다. 이들의 눈에는 기독교인으로 참여한 민족대표 16인만 보인다. 민족대표 33인은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자수 아닌 자수형태로 일경에 끌려갔다.

만세운동의 현장에 33인은 없었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주체는 시골에서 올라온 빈민, 농민, 걸인, 부녀자, 학생 등 보잘 것 없는 기층민중이었다. 그렇다보니 한국교회가 정부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 분명한 것은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지 않는 국민은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역사를 왜곡하는 한국교회는 미래가 없다. 이들의 행동은 사순절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기 안에 도취돼 고난당한 한민족과 유리된 행동을 하는 기독교인들이다.

기독교단체의 대통령의 3.1절 메시지와 정부의 일본외교정책 지지성명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하나님을 배교한 신사참배 결의를 정당화시켜주는 꼴이 됐다.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는 한국교회가 이것 말고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나라는 우는 자, 고난당하는 민족과 함께 할 때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순절기간에 고난당한 민족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고난당한 민족을 몰각하고, 40일 금식기도를 한들, 1천일기도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의 행동을 보면, 한국교회는 일제하에서 고난당한 한민족의 아픔을 망각했다. 한국교회 교회사가 말해주고 있듯이, 한국교회의 선교는 권력을 등에 업고 이 땅에 들어왔고, 싸구려 복음을 전파하며, 기층민중들 속에서 성장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교회 안에서, 교인들 사이에 작게나마 민족의식이 살아남아 3.1만세운동을 한민족의 중심에서 일으켰다. 이런 역사를 망각하고, 한민족과 반하는 행동을 하는 교회는 한마디로 희망이 없다. 하나님나라에 참여할 동력조차 상실했다.

3.1만세운동은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비폭력평화운동이며, 대한독립운동이다. 민족해방운동이다. 이런 3.1만세운동이 일부 교회지도자와 정치인에 의해서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여기에 대해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세상의 권력도 하나님이 준 권력이라며, 권력의 잘못을 비호하기에 바쁘다. 여기에다 일부 연합단체가 대통령의 한민족과 유리된 대일외교정책에 대해 앞을 다투어 지지하는 성명서을 발표했다는데 참담하다

고난당한 한민족역사 몰각하지 말라

이는 곧 한국교회가 권력의 시녀노릇을 해 왔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는데 문제가 없다. 이런 상태로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없다, 하나님의 참사랑(복음=기쁜소식)에 참여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일본을 향한 굴욕적 태도에 대해, 예언자 전통을을 잃어버린 교회는 민족에게 희망을 가져다가 줄 수 없다. 분열과 갈등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송사하기에 바쁘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교회의 분쟁 때문에 먹고 산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교회분쟁소송 전문변호사까지 등장했다. 교회의 정체성을 뿌리 채 흔들어 놓았다. 사순절기간을 보내고 있는 한국교회는 가던길을 멈추고, 우는자, 고난당한 민족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늘날처럼 교회와 권력이 밀착되어 있었던 때도 없다. 무엇보다도 정치가 국민의 생활 구석구석까지 침투하고, 개인적인 의식이나, 생활을 지배하게 된 이 시대에는 사도바울의 말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오늘날 문화, 종교, 사회, 경제 등 모든 국면에 정치가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여기에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노동자와 농민의 삶은 큰 영향을 받는다. 노동자와 기업가가 자율적으로 협의해서 서로의 권익을 추구하고, 해결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다.

언론 역시 정권의 나팔수로 변질됐다. 남과 북의 적대적 관계는 씻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남북의 갈등의 깊이는 갈수록 깁게 패이고 있다. 여기에다 우리정부의 미래로 나가기 위한 대일정책에 대해 일본정부의 미혼적인 태도, 아니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고압적인 태도는 눈뜨고 도저히 봐 줄 수가 없다. 한국교회의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대한민국의 앞날을 어둡게 만든다. 일본교회도 이 정도는 아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정치권력과 함께 침몰 위기에 직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봉건시대에는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삶이 종교에 예속돼 있었다. 그런 종교가 언제부터인가 경제에 예속되더니. 오늘 한국교회는 정치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그것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모두 정치권력에 예속된 결과이다. 물 한잔을 갈급해 하는 고난당한 한민족의 아픔을 몰각한 교회는 하나님의 참사랑(복음=기쁜소식)을 잃어버렸다.

교회는 권력의 시녀가 되었다. 모두가 예수님의 평화, 샬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힘에 의한 평화, 팍스를 외친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참사랑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사순절 3주를 보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고난을 지겠다는 교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형식적인 예수님의 고난을 말한다. 어떤 이는 금식을 선언하고, 금식기도를 하겠다고 약속한다. 여기에는 진정성이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

피 묻은 손에 기도해준 한국교회

이렇게 국민생활을 관리하는 정부의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가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 생활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신앙적, 교회적으로 이 문제를 정리하고, 밝힐 필요가 있다. 로마서 131-7절의 말씀은 권력에 복종하고, 권력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라는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문제는 이 성경구절을 일반적인 진리, 영구불변의 교리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것은 큰 잘못이다.

일부 목회자들은 일본제국주의와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이 성경구절을 내세워 군사독재정권도 하나님이 준 권력이다, 무조건 복종 할 것을 강단에서 외쳤다. 일본제국주의 권력도 하나님이 준 권력이라며, 총독부의 종교정책에 따라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은 예언자 전통을 이어 군사독재정권을 비판하는 목사들을 향해 정치목사라고 매도하는 잘못도 범했다. 대신 이들은 조찬기도회 등을 주도하며, 피 묻은 손에 기도해 주는 잘못을 범했다. 이들은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위로와 기도회 한번 열지도 않았다. 이들 목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었다. 이들은 하이에나보다도 못한 성직자이다. 정치권력과 긴밀하게 밀착되어 있는 삯꾼 목회자이다.

이들은 군사독재정권과 군사독재정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를 못했다. 국민의 반대에도 한일관계 해법을 제시한 우리대통령의 대일외교정책에 대해 일본은 과거의 말을 되풀이하며, 후속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며, 미래로 나가자는데 공감했다. 오히려 일본 외무상의 발언은 대한민국 국민을 화나게 만든다. 이들에게서 미래로 나가기 위한 진정성을 기대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앞으로 일본의 태도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미래로 나갈 수도 있고,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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