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헌 철 목사
서 헌 철 목사

‘진해성’이라는 가수가 모 방송사의 ‘오디션’에서 “저는 계단을 오르는 마음으로 노력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면 주위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 보면 주위가 보입니다. 그리고 항상 계단 오를 때는 첫 계단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유투브’에서 스쳐 지나간 내용이기에 그의 모든 말을 다 기억해 낼 수는 없고 다시 찾아 듣기도 어려우나 필자에게 울림이 되었다.

 아직도 서늘한 냉기의 바람은 남은 듯하나 봄기운에 얼었던 땅이 녹고 새싹이 파릇파릇 솟아오르게 하는 계절, 움츠렸던 마음들도 기지개를 켜듯 청소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학업에 정진하기 위해 힘찬 발걸음들을 내딛으며 3.1 독립만세운동과 같은 결연함으로 만학의 꿈을 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신학교를 찾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높은 이상이나 벼슬 등을 꿈꾸는 이들과는 다르게. 오직 자신을 섬김의 삶이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 이라는 마음에서 주님의 제자 된 길을 묵묵히 따르겠다는 결단에서 시작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신학 공부를 하다가 보면 초심은 어디에 흩뜨렸는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보답하는 생활이라고 볼 수 없는 욕심, 오만, 독선 등으로 빠져드는 자들을 종종 본다.

 왜일까? 한결같은 마음으로 섬김의 길을 걸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므로 새벽기도, 금식기도 등의 기도를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 기도가 하나님의 뜻이나 자신의 아픔 등 보다는 자신의 탐욕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라면 오히려 더욱 혼란스러운 망각의 길로 향하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을 깊이 새기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

 성경은 ‘사울 왕’에 대한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자세에 대하여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4)"라고 선포한다.

 성경의 제사(祭祀)를 말할 때 영어로는 sacrifice 라 하기도 한다. 이는 희생(犧牲)을 말하는 것으로 제물을 희생시키는 것이요, 제물을 드리는 것이요, 제물이 죽는 것이요, 제물의 각을 뜨는 것이요, 제물의 피를 흘리는 것이요, 제물을 불에 태우는 것이다. 제물의 향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순종(順從)이란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요, 자신을 드리는 것으로, 자신이 죽는 것이요, 자신의 각을 뜨는 것이요, 자신이 피를 흘리는 것이요, 자신이 불에 태워지는 것이요, 자신의 향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와 순종을 성취하시고 성취하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전도자 등을 통해서도 이루어가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각종 유혹에 넘어지지 않으며,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되 첫 계단을 오르는 자세로 부르심의 목적에 부합한 겸손의 은혜를 누린다면 새싹, 꽃망울을 맺게 하는 봄의 대지와 같으리라.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 4:122-25)

한국장로교신학 연구원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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