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택 목사
김 정 택 목사

일곱째, ‘성도의 교통하는 것과’에서 성도의 교통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단이나 잘못된 자들과 교통하는 것은 안 되지만 진리 안에서는 서로 교통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한 몸이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께서 머리이시고, 우리는 지체이기 때문에 머리와 지체가 서로 교통이 잘 이루어져야 건강체가 된다. 어디가 막히게 되면 각종 병이 오게 된다. 따라서 육체의 모든 혈관이 교통, 즉 소통이 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들 간에 교통이 잘되어야 하지만 잘못된 사람과의 교통은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요이 7-11을 보면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와 교통하는 것과’는 글자 그대로 성도와 교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도는 바른 진리 안에 있는 사람과 서로 교통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여덟째로, ‘죄를 사하여 주는 것과’에서 죄를 사하는 것은 천주교에서 신부에게 죄를 고하는 고해성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개신교에서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마 9:2를 보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며 예수께서 죄 사함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때 당시 어떤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에 ‘참란하다’고 말하였다(3절). 

  하지만 예수께서는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6절). 그럼에도 죄를 사하는 문제를 천주교의 신부와 동일시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오히려 천주교를 빙자하는 것이 잘못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준다고 믿으면 된다. 왜냐하면 이처럼 복음서에는 죄를 사해준다는 말씀이 여러 곳에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부에게 죄를 고해성사한다고 해서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다. 천주교의 신부는 죄를 사할 권세가 없고, 오히려 자신도 죄 사함을 받을 대상일 뿐이다. 

  우리는 죄를 사해줄 권세는 예수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로 인하여 우리의 죄를 책임지셨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마지막 때도 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며 계시록도 피를 가지고 말씀하고 있다. 계 1:5에 보면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라며 예수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시록도 피 뿌림이 없으면 가치가 없는 책이 된다. (다음 호에 계속)    
                            
합동총회신학신대원 학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