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시편 62를 막대그래프로 그리면 세 봉우리가 드러난다. 곧 1-2절, 5-6절, 그리고 9절이다. 각 꼭대기에는 시편 62에 여섯 차례(1, 2, 4, 5, 6, 9 절) 등장하는 부사 아크(ךא)가 기둥처럼 버티고 있다. 아크는 한정 또는 강조할 때 ‘오직, … 만’이나, ‘진실로, 확실히’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개역개정>은 1, 5절에서 ‘… 만’으로, 2, 6절은 ‘오직’으로 번역하였고, <새한글>은 4절에서 ‘참으로’ 나머지 구절에서는 한정적으로 옮겼다. 후자처럼 원문 ‘아크’의 일관성은 떨어지지만 동일하게 옮기지 않고 문맥에 따라 적절한 부사어를 선택할 수도 있다. 아크의 한정적인 용법으로 창세기 18장의 아브라함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아브라함이 소돔의 멸망을 두고 하나님과 흥정하는 과정에 ‘아크’가 나온다. 그는 소돔에 의인 50명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는지 묻는다. 여기에는 ‘의와 공도의 하나님’이 의인을 까닭 없이 죽이지 않다는 아브라함의 확신이 깔려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창 18:26). 하나님은 소돔을 멸하시지 않겠다고 물러난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45명 → 40명 → 30 명 → 20 명까지 용서하겠다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는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이번만 더’ 아뢴다며 의인 10명을 제시한다(창 18:32). ‘한 번, 또는 지금’을 뜻하는 ‘파암’ 앞에 부사 아크가 꾸민 형태로 ‘정말 이번만’을 가리킨다. 델리치는 아브라함의 ‘이번만 더’를 철면피한 신앙, 부끄러운 줄 모르는 신앙이라고 꼬집는다. 

그렇다고 시편 62이 철면피 신앙을 노래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시인은 ‘엘 엘로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근거와 그 분을 확인하는 방법을 자신감 있게 제시한다. 1절과 5절의 사역은 다음과 같다.

오직 하-하나님께만 내 영혼아 잠잠하라 나의 구원은 그에게서 오리도다(1절). 
오직 하나님께만 내 영혼아 잠잠하라 나의 소망이 그에게서 오리도다(5절).

우리가 영적으로 잠잠해야할 이유는 2절과 6절에 두 차례 제시된다. ‘오직 그분만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시니 내가 크게 요동하지 않으리로다.’ 사실 강조 부사 ‘크게’가 2절에 추가되었을 뿐 1-2절과 5-6절은 동일한 설계도의 건축물처럼 쌍둥이 구절이다. 시인이 쌓은 신뢰의 두 봉우리는 왜 조용히 하나님께만 집중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거듭 보여준다. 시편 62의 처음 두 봉우리가 절대적 신뢰의 대상인 하나님께 초점을 둔다면 세 번째는 시인을 포함한 인생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9절의 아크는 인생을 돌아보며 내뱉는 후회의 한숨이나 인생무상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개역개정>의 ‘아 슬프도다’보다 ‘진실로’가 적절하다. 세 번째 봉우리는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라고 두 차례 강한 의지를 표출한 뒤 내면으로 들어간 뒤에 얻은 결론이다. 곧 아담의 자손이나 사람의 자손이나 믿을만하지 않으니 힘에 의존하거나 재물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오래된 철학을 확인한 것이다(잠 3:31; 11:28; 27:24). 

시편 62의 세 봉우리에서 얻은 성찰이 마무리 단계에 진입한다. <새한글>과 흠정역의 11절 번역은 흥미롭다. “한 가지를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이나 그 말씀을 내가 들었습니다.” <개역개정>의 ‘한두 번 하신 말씀’도 빈도수를 설명하듯 옮겼다. 원문을 살리자면 “하나님이 한 말씀하셨지요. 거기서 나는 두 가지를 깨닫습니다”로 옮길 수 있다. <새번역>과 비교하라. 시인이 1,5절에서 잠잠히 하나님께 집중한 결과다. 그가 알아차린 두 가지를 설명하기 위해 친절하게도 관계사 키(יכ)를 11절 후반과 12절에서 두 차례 내세운다. 하나는 “권능이 하나님께 (속하며) 헤세드는 나의 주님 당신의 것”이요, 다른 하나는 “주님은 각 사람의 행실대로 갚으신다는 것,” 그 두 가지 교훈이다.

시인은 이 두 가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아크를 활용한 세 개의 봉우리를 보여주며 시적 운율을 멋지게 살렸다. 동시에 우물에서 아침 찬물을 길러내듯 ‘잠잠히 침묵 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을 거듭 거듭 확인한다. 오랜 성찰과 울림을 주는 신뢰시다. ‘하나님의 한 말씀에서 나는 두 가지 교훈을 깨닫나이다.’ 그만큼 깊은 묵상과 ‘오직’(ךא) 하나님만 잠잠히 의지한 결과물이다.

한신대 구약학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