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좌절에 잠긴 세계민족에게 예수님의 평화를
십자가 부활
,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과 사랑의 약속

부활하신 예수는 사상이나, 정신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삶 속에서, 아니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다. 나눔의 현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성서는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2023년도 부활절도 가난과 질병, 전쟁과 자연재해로 고난당하는 인류에게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시작됐다. 특히 코로나19에 갇혀 살던 인간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인류 모두는 살해 당한자의 아픔을 모르고, 부활의 아침을 기다릴 수 없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활의 역사, 생명의 역사는 시작되었지만, 국민들은 마냥 기뻐할 처지가 아닌 것 같아 안타깝다. 분명 부활의 계절은 살해당한 자, 버림받은 자, 전쟁의 폭력배들에게 고난을 당하는 사람, 굶어죽는 사람을 그대로 놓아두고서는 맞이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이들을 통해서 구원, 하나님나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시작됐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님께서 사망권세 이기시고, 슬픔과 좌절에 잠긴 인간에게 다시 찾아오셨다. 살해당한 예수님이 인간에게 찾아 오셨다. 예수님을 살해해 돌무덤에 넣고 바위로 무덤을 막고 나서 로마군인들이 지켰다. 그런데 살해당한 예수님은 부활해 우리에게 나타났다.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굳어져버린 인간, 눈이 어두운 인간들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배욕과 탐욕에 길들여진 한국교회는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드리던 부활절연합예배마저도 사분오열됐다. 금년도 부활절연합예배도 다섯 군데서 드린다. 한 하나님을 믿으며, 같은 성경을 보고, 같은 찬송을 부르며, 같은 신앙고백을 하면서, 교회지도자들은 욕심이 가득해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교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되지를 못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전쟁과 기아, 지진으로 고난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봉사한다고 외친다.

사분오열된 인간의 가능성이 끝나는 곳에서, 전쟁과 자연재해로 절망 속에 있는 곳에서, 유대의 권력자들과 로마군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남김없이 다한 곳에서, 제국에 의해 힘없는 자들이 유린당한 곳에서,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은 한민족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 잔인한 2월과 3월을 보내고 부활의 아침,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시작됐다. 하나님은 결코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간이 설치한 장애물을 거둬내고, 살해당한 예수님을 살렸다. 인간의 절망과 좌절을 뚫고, 모든 것을 허무에 빠트리는 죽음을 깨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렸다. 예수님은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죽음을 이기셨다. 살해당한자의 부활은 모든 가능성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왔다. 죽음의 고난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부활을 경험 할 수 없다.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에 참여할 수 없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에 참여할 수 없다.

죽음의 세력은 죄와 율법 통해 인간 지배

죽음은 인간을 일정한 틀에 가두어 놓는다. 죽음의 세력은 죄와 율법을 통해 인간을 지배한다.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는 곳에서 인간들은 이기적 욕심에 사로잡히고, 율법적 강제를 당하게 된다. 사실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 있는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율법이 필요 없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과 지배욕이 강한 사람, 정치인들에게 자신을 강제할 수 있는 율법이 필요하다. 오늘 한국교회는 율법에 사로잡힌 자들에 의해서 부활절연합예배가 사분오열돼, 한 부류는 영락교회서, 또 한 부류는 광화문 동화면세점서, 또 한 부류는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서, 또 한 부류는 솔로몬교회서 드린다는데 참담하다.

여기에는 이기적 욕심에 사로잡힌 교회지도자들이 있다. 이들은 결국 율법적 강제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망각했다. 성령을 몰각했다. 그렇다보니 이들은 연합단체를 3개로 분열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부활절연합예배마저도 5개로 분열시켰다. 이들은 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림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깨트리고 죄와 율법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셨다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잊었다.

하나님은 살해당한 예수님을 살림으로써 좌절과 절망 속에 있는 인간을 희망과 용기를 가져다가 주었다.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를 약속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인간들에게 영원한 승리를 약속했다. 불의와 거짓을 지키려고 총과 칼을 잡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패배를 선포했다. 부활의 아침,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인간 모두가 무엇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교육하는 대목이다.

인간의 역사는 진리 편에서 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총과 칼을 가지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불의한 사람들의 싸움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언제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총과 칼을 휘두른 사람들은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승리를 거두었다. 죽음이 궁극적인 것이라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라면, 역사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의 승리로 끝나고 말 것이다.

사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모든 노력과 계획은 무너진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다. 죽은 자는 말을 못한다. 인간의 모든 가능성, 모든 희망이 사라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경험을 한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다. 발버둥을 쳐도, 재주를 부려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가 없다. 우리는 과거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안타깝게 죽임당하는 학생들을 보았다. 총과 칼에 쓰러지는 시민들을 보았다.

이들의 죽음을 하찮게 여긴 사람들이 바로 교회지도자들이며, 그리스도인들이다. 오히려 교회지도자들은 피 묻은 손에 기도를 해 주었다는 사실. 예수님의 죽음은 이스라엘민족의 미래에 절망을 가져다가 주었고, 예수님의 삶의 현장서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좌절을 가져다가 주었다. 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큰 능력을 보인 예수님이, 사랑과 진리를 위해서 몸을 내맡긴 예수님이 불의하고 악한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다니! 도대체 하나님은 있는 것인가? 역사를 지배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악한세력과, 창과 칼이란 말인가? 그렇게 선하고 의로운 분의 최후가 이렇게까지 참혹할 수 있을까? 낙심하는 제자들과 함께 걸으며,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로한다.

슬픔에 잠긴 인간에게 찾아온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예수님이 좌절과 슬픔에 잠긴 인간에게 희망이 되어 다시 찾아오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한다. 죽음과 허무에 빠진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준다. 죄와 율법에 의해 인간은 죽음과 허무에 빠져 있지만, 영원한 생명과 사랑의 문을 열어준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생명과 사랑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까지도 인간에게 내어주고,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한 예수님에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비록 전쟁과 강진으로 힘겨운 날들을 보낼지라도 예수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은 인류 모두에게 새 희망을 가져다가 준다. 미래를 약속한다. 특히 러시아의 침략으로 어려움에 처한 우크라이나 국민, 규모 7.8의 강진으로 고난당하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민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사랑과 생명으로 다가 갈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과 생명이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한다는 것을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교육하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정신과 신앙 속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부활한 예수님을 만났다. 우리도 예수님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송태섭 목사)과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정서영 목사)는 노숙자들을 위한 밥퍼 행사에 참여했다. 이 두 단체의 밥퍼 행사는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 예수님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서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이밖에도 한국교회는 각 단체 및 교단, 교회별로 2월과 3월 진도 7.8규모의 강진으로 고난당하는 튀르키예 국민과 시리아국민 돕기 운동에 나섰으며,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정서영 대표회장 취임식에서 나온 백미(1천만원)를 종로구청과 밥퍼 단체에 전달했다.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에 벌인 이 같은 사랑실천운동은 무너진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예수님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교회가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신대 교수 박재순 목사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상이나, 정신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나니라 주체적인 삶 속에서, 그것도 밥을 나누어 먹는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면서, “가장 물질적이고 일상적인 밥을 나누어 먹는데서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는 것은 성서가 아니고서는 알아볼 수 없는 사실이다고 자신의 저서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에서 밝혔다.

몸과 생명까지 나눈 예수님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에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삶의 현장서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몸부림이며 노력이다. 한국교회 적극적으로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 참여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걱정만을 주고 있는 교회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자신의 몸과 생명까지 인간들에게 내 주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누어 주다보니 결국 자기 자신까지 나누어 주게 되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 중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말하면서, 행동으로 옮기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만나보기 힘들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위선적인 사람이다. 이제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 말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참여.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 평화를 맛보야 한다.

그렇다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할 자리이다. 성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형제들 속에 있다고 교육하고 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상처입고 쓰러진 강도만난 자의 모습으로 현존하고 우리들 속에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 오늘 예수님은 전쟁과 기아, 자연재해로 고난당하는 사람들 속에, 피와 눈물 흘리며 십자가에서 조롱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오늘 한민족의 가장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 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동포와 함께 하나님의 참사랑(복음=기쁜소식)을 실현해야 한다. 이것이 상처이고 쓰러진 강도만난 자의 모습으로 현존하는 예수님의 평화, 샬롬을 실현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