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헌 철 목사
서 헌 철 목사

‘부활절’ 마다 감격한다. 그러나 ‘부활절’이 지나면 ‘언제였지’? 할 정도로 잊고 사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성도라면 매일매일 부활절의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과연 예수님의 육체의 부활이 믿어지십니까?"라는 질문에 간혹 당황하는 신자들을 보기도 한다.

 우리는 순교자들을 생각하면서 부활 신앙을 다짐하기도 한다.

 실례로 ‘사도 베드로’는 사형장에 끌려가는 부인을 보면서 그가 천국에 불리어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기뻐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위로와 격려를 보냈는데 "오! 여보! 주님을 꼭 기억하시오"라고 했다고 한다(참고 : 이성호 편저 기독교순교사 혜문사 1962).

그렇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사도 베드로’는 분명 천치 바보 아니면 정신이 이상한 자이다. 만일 스승의 시체를 도둑질하여 감추어 놓고 거짓으로 부활을 외쳤다면, 부인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데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잘 죽으라고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간혹 속으로 웃는 사람? 작금의 세태에는 그런 미친 사람도 간혹 있다고도 합니다만?.

그러나 베드로 등 사도들의 상황은 전혀 다르지 않은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보았고, 무려 40여 일을 같이하고 음식도 나누고, 제자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라가심을 목격하였으니 무엇이 두려웠겠는가? 따라서 부인은 물론 자신도 예수님의 예언대로 순교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심판 주로 다시 오심을 확신하는 복을 누려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머리 둘 곳도 없으셨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예수 팔이 한다”고 비아냥대는 이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배만 위하고, 부를 축적하는 등 탐심의 우상숭배를 하면서도, 성도(이웃)들을 향하여는 “세속적인 것은 모두 버려야 한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니 하나님의 영광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자들이 아닌가?. 자신은 세속의 것으로 가득 채우기를 원하고, 학벌이 무슨 소용이냐 예수님은 갈릴리 어부들을 제자 삼으셨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학벌을 속이거나 위조하고, 학문연구에 힘쓰는 박사들을 모독하는 가짜 박사들이 학위 자랑을 늘어놓는 등이 끊이지 않다니?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갈망하는 은혜를 누린다면 부활을 말하기 전에 회개부터 하자, 

믿음의 선진들은 참으로 구별된 삶을 살았다. 생활, 질병, 죽음의 문제 등에 절대로 비굴하지 않았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도 바울 역시 바보가 아니다. 수많은 핍박과 고통과 괴로움 등을 당하면서도 세속적인 부, 명예 등은 물론 율법적 신앙 등까지, 자기의 모든 것을 배설물 같이 여겼다. ‘사도 바울’이 거짓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아둔한 자가 아니다. 당신이라면 거짓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는가? 따라서 매일매일을 부활 신앙의 은혜를 누립시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심판 주로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갈망합시다.

(11)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2)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 하였노라 하니 (14)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행 21:7-14) 

한국장로교신학 연구원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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