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현 식 목사.
박 현 식 목사.

오늘날 물질만능주의의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글이 있다. 그 글의 제목은 돈기도문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갑 또는 통장에 계신 돈님이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돈이 판치는 세상이 임하였사오니 소득이 부동산투자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증권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나에게 쓰고도 남을 돈을 주옵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고소함같이 나의 진 빚을 잊게 하옵시고 우리를 불황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부도와 파산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자본주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돈님께만 영원히 있사옵니다. 돈 내!’

그렇다. 우리들은 이렇게 돈이면 다 된다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교인들도 돈을 믿고, 돈에 소망을 두고, 돈을 사랑하고, 돈으로 목회도 다른 모든 것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돈기도문이 생활 철학이 되어 버린 이 시대에 목회자들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만이 절대기준임을 담대히 선포하며 목회자들 자신이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사실 돈이 많다고 교만해지고 우쭐대는 것도 죄이지만, 돈이 없다고 위축되고 열등감에 빠져 사는 것도 죄이다. 성경의 기준은 부함도 가난함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 말씀만이 절대기준이 되어야 한다.그러나  우리들의 속마음은 아직까지도 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교인들을 끌어 모으고 풍족한 사례비를 받으며, 좋은 저택(?)에서 살며 ‘그래 저 목사 목회 성공한 목사야’ 이런 칭찬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가? 숫자와 돈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이 목회현장에서 “나는 자립 교회에서 장기간 개척 또는 사역하다가 은퇴하게 되었는데 목회하는 내 아들, 사위가 경제적으로 고생하면 안되니까 바로 세습,아니면 삼각 또는 교차 교회 대물림하는 일은 하나님도 이해해 주실거야”라고 스스로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는가?여기서 이러한 모든 발상들의 출처가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 만능주의애서 기인되었음을 어느 누구라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돈에 대한 영적 흐름을 따라 살아야 한다. 신약성경 야고보서 1장10절에 보면 ‘부한 자는…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가 세상에서 누리게 되는 물질로 인한 기쁨은 지극히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돈이면 다 된다는 이 시대에 목회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를 실천 모델로 삼으면 된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 자신이 물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이 물욕을 비웠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자기 자신을 영적인 것으로 가득 채웠다. 나아가서 삭개오는 자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고 우상으로 삼았던 돈을 토색한 자들에게는 4배로 갚아주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어 주었다.

 삭개오에게는 ‘비움, 채움, 나눔’이라는 경제적인 순환과정이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인 순환과정과 흐름이 우리들이 섬기는 교회, 목회자들, 교회 중직자들, 교인들에게도 반드시 있어야 하고 자신의 경제생활 속에 실천하여야 한다

이 시간 주기도문이 아니라.  자꾸 돈기도문이 떠오른다 돈 없으면 장로도 권사도 못되고 교회에서조차 사람 취급을 못받는 이러한 천민자본주의의 시대에 많은 지도자들은 돈이 있는 성도와 돈이 없는 성도들을 차별 대우하는 악한 행동들을 자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나도 “그래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어쩔수 없지.그렇지만 대놓고 티나게 행동하지 말아야지, 이럴 때일수록”교우 여러분, 절대로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교회에서는 차별해서는 안됩니다“소리쳐 외치면서 교인들에게 들키지 않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잘 대해 주는 것처럼 노련하게 처신하면 되지”변명하며 자기 정당화하는 것이 우리들의 속내가 아닐까?혹시 나도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고 확실히 믿으면서 살고 있지는 않는가?

한국교회 목회자인재 폴 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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