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성 길 목사.
권 성 길 목사.

조물주는 인간에게 신에 가까운 온갖 재능을 다 부여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걸작이라고 찬양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조물주의 모든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지구의 전시장에서 인간에게 최고의 금딱지를 붙여놓고 찬양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완제품이라고 이것을 완제품이라고 믿어서는 큰 사고를 저지를 것이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온갖 재능을 부여할 때 그는 자신을 반역할 악마의 소질까지 집어넣어 버렸다. 작가 이 범선(李範宣) 씨는 「오발탄(誤發彈)」이라는 작품을 썼었다. 너무도 불행하게 태어난 주인공을 가리켜 조물주의 오발탄이라고 명명(命名)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특정 인물이 아니라 하더라고 조물주는 자의(自意)의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도리는 없지만 모든 인간의 원형(原形)을 만들 때 애초부터 모순이 있었지 않을까? 천사와 같은 마음씨에다 악마와 같은 악질적 본능까지 결합해 비극적인 혼합물을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인간은 애초부터 모두 미완성품이다. 부모들이 대학교육까지 마치게 해주었다 하더라도 역시 미완성이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아무리 박사학위를 받고 최고의 관직에 오르고 최고의 명예훈장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역시 미완성품이다. 이렇게 미완성이란 날이 갈수록 변하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서 발전할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라는 뜻이다. 탄 짐승들은 아무리 훈련하더라도 그 변화발달에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 한계를 알 수 없지 않은가? 학력은 대학원졸업까지 만이 아니라 끝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배우고 무슨 성자 적 업적과 악마적 업적을 남길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실험실의 플라스코에 담긴 액체와 같다. 온갖 가능성의 물질들을 혼합시켜 놓았는데 조물주의 의도는 물론 좋은 일만을 시키자는데 있지만 정말, 이 혼합물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악마적 소질까지도 다분히 지닌 인간이 그래도 비교적 그 더러운 습성을 잊어버리고 모두 천사처럼 아름답고 고귀하게 되는 순간은 없을까? 그것을 우리는 또 프랑스의 시인 뮷세에게서 들어보기로 하자. 그는 온갖 악담을 동원해서 남자와 여자, 그러니까 인간 전체를 중상모략했다. 그런데 악담을 토하던 그가 끝에 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단 하나 신성하고 숭고한 것이 있다. 그것은 그토록 불완전한, 그토록 더러운 두 개의 물건이 서로 결합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두 남녀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토록 더러운 물건들이 서로 만나서 사랑을 하다니 참으로 신기할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 뮷세의 생각이다. 그러나 결론이 이렇게 내리고 보면 뮷세는 인간들을 야유하기 위해서 그 악담을 퍼부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토록 더러운 습성들을 지닐 수 있는 것이 인간인데 그들이 서로 사랑을 하며 거기에 생명까지도 걸 수 있다는 것은 완전한 신과 같은 존재가 서로 맺는 사랑보다 얼마나 고귀한 것이랴! 사실로 이것은 뮷가 인간의 사랑을 최고의 찬사로써 축복하기 위해 남긴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악마적인 소질이 다분한 사람들이라도 그가 진실로 사랑할 때만은 그의 모든 진실을 다해서 상대방을 아끼고 찬미하고 스스로 경건해지며 그 기쁨 속에서 인생의 찬미가를 부른다는 것, 이것이 진실한 애정의 숨김없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비록 모두 미완성품이라 하더라도 서로 애인을 찾아 사랑할 때만은 완성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단 여기엔 조건이 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부르는 모든 애정 형태가 그런 것은 아니다. 동물적인 욕망의 충족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그보다도 같은 인격의 위치에서 상대방을 무한히 찬미하며 그 사람 앞에서 무한히 겸손하고 무한히 봉사적일 수 있는 진실한 사랑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새세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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