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인 찬 목사.
황 인 찬 목사.

기독교내에서는 수도원 운동을 반대하는 분들이 있다. 수도원운동은 ① 가톨릭 전통이지 기독교전통이 아니란 생각에서 반대하기도 하고, ② 수도원 운동이 현실도피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피안의 세계를 동경하는 현실 도피의 소극적 종교 활동이라는 생각에서 반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③ 수도원 운동의 고행과 금욕적 삶은 복음적이라기보다 이교(異敎)적 전통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수도원 운동에 대한 오해에서 출발한 것이다. 어느 종교든 종교생활에서 수도(修道)와 수행(修行)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요소이다. 중세 종교개혁 운동의 첫 깃발을 들었던 마르틴 루터는 본래는 수도사였다.

2천년 교회사에서 수도원은 교회가 핍박을 받을 때면 죽음을 각오하고 교회를 지켰고, 교회가 세속에 빠져들 때는 회개와 경건으로 교회를 건졌다. 그리고 이단사이비가 득세할 때는 올바른 신앙운동의 기준을 세워주었다.

동방수도원 운동의 시작은 3세기 이집트에 안토니(AD 251~356)로부터 시작되었다. 부잣집 아들이었던 그는 마태복음 19:21절 말씀에서 영감과 도전을 받게 되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데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청년 안토니는 이 말씀에 그대로 복종하기로 하고 아버지가 물려준 대농장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외딴 곳으로 가서 기도와 금식, 노동과 명상에 전념하였다. 그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말씀과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살후 3:10)라는 말씀을 따라 기도와 노동에 힘썼다.

아타나시우스가 쓴 “안토니우스 생애(Life of Anthony)”에 의해서 그 명성이 알려져 사람들이 그의 덕을 사모하여 모여 들자, 그는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 수도생활에 정진하였다. 성 안토니로부터 시작된 수도원 운동이 4세기를 지나면서 사막교부들의 시대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이 사막으로 들어가 수도, 수행의 생활에 헌신하게 되었다.

이 수도원 운동은 서방교회에까지 확장되었다. 특히 중세교회가 영적으로 쇠퇴하여 교회의 본 모습을 잃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도원 운동이 평신도들로부터 일어났다. 베네딕트, 프란시스코, 도미니칸 등이 서방교회 수도원 운동의 중심에 서면서, 수도원 운동은 교회사에 뿌리를 내려갔다.

어느 수도원이든 수도원 생활에 청빈(淸貧), 순결(純潔), 순명(順命), 노동(勞動), 거룩한 독서(Lexio Divina)등 다섯 가지를 기본 덕목(德目)으로 삼았다.

이들 덕목은 교회와 교인들에게 꼭 있어야 할 덕목들로 교회사에서 영적 암흑기였던 중세교회를 지켜온 것은 수도원들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수도원 운동이 없었더라면 교회는 영적 암흑기를 극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한국교회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교회다. 한국교회는 격변의 시기에 근대화, 항일운동, 반공운동, 민주화운동 등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한국교회 없이는 한국의 현대사를 논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 기여와 성공 후에 최근 들어 한국교회는 교인의 감소와 교회가 세인들로부터 비난과 비판을 받는 처지까지에 이르렀다.

5백여 년 전 교회개혁을 이룰 때에 개혁가들이 부패한 가톨릭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교회를 세울 때에, 가톨릭의 좋은 점까지 함께 벗어던진 감이 없지 않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수도원 제도일 것이다. 물론 당대의 수도원들이 가톨릭 부패의 온상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나 부패한 제도를 극복하려다가 그 영성까지 거부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집트의 성 안토니가 사막한 가운데로 들어가 수도원 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사막의 교부시대를 지나 베네딕트 수도원, 프란시스코 수도원 등이 앞서 부패한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크게 쓰임 받았던 역사적 사실이 있다. 

기독교에도 그와 같이 헌신하여 봉사하며 경건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남녀 성도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는 제도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가 교파와 개 교회를 넘어서는 회개와 제도의 혁신 그리고 대국민봉사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런 혁신운동에 수도원 운동이 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난 2천년 교회사에서 교회가 병들고 세속화 될 때마다 경견 운동으로서의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 교회를 쇄신함에 큰 기여를 했다. 지금 한국교회에 그 경건운동이 필요한 때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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