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더 이상 국민 화해와 통합을 위해서 봉사하는 종교가 아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에 속한 모든 교단과 단체,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안에서 화합과 연합, 그리고 남북한민족의 화해와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노래하듯이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기독교에 속한 모든 이들에게서, 화해와 통합, 그리고 남북한 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한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은 반 화해적이고, 반 통합적이다. 또한 반 평화적이고, 반통일적이다. 그것은 분열과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교회 보수적인 연합단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모두가 자기 안에 갇혀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동역자도 없다. 이웃단체, 이웃교단, 이웃교회를 인정할 줄도 모른다. 이들은 분명 성령을 몰각한 그리스도인들이다. 나에게서 너와 그에게로 성령이 전혀 흐르지를 않는다.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굳어져 버렸다. 인정머리라고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오죽했으면 하나님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킨 종로5가의 쓰레기들을 청소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종로5가의 교회지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럴듯한데 행동은 적그리스도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 그리스도인이다. 율법과 성경은 잘 아는데, 강도 만난 자를 보고서도 그냥 지나쳐버린 제사장과 레위인과 다르지 않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 성령을 몰각한 한국교회도 썩어 들어가고 있다. 모두가 국민적 갈등만 부추긴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분명 종교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인지를 전혀 인지하지를 못한다. 그렇다보니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고난당한 강제징용자, 시궁창보다도 못한 삶을 살며 청춘을 빼앗겨버린 이 땅의 소녀들, 전세 피해자, 자신의 권리를 위해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의 아픔에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미래로 나가자며 과거에서 헤어나자고 한다.

성경은 분명하다. 강도 만난 자를 외면하고서는 미래로 나갈 수 없다고 교육한다. 과거의 아픔을 몰각하고서는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할 수도 없다고 교육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1천여년 동안 주변국가의 식민통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를 갈망했다. 그리고 하나님과 율법으로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오늘 대한민국은 과거 고난의 역사를 망각하고, 미래로 나가자고 한다.

영미 제국주의신학과 영미 교파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교회는 힘에 의한 평화, ‘로마 팍스’, ‘아메리카 팍스’, ‘차이나 팍스’, ‘재팬 팍스’, ‘소비에트 팍스를 외친다.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에게서 예수님의 샬롬(평화)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한마디로 한국교회가 말하는 평화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자신의 허물을 보지 못하고 정치인들을 향해 말장난을 한다고 비난한다. 올해는 6.25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을 맞는 해이다.

오늘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정세와 정치인과 기독교인들의 말을 보면, 새로운 세상,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한반도의 분단을 정치적, 이념적으로 이용하고, 예수님의 샬롬을 외쳐야 하는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연일 힘에 의한 평화, 아메리카 팍스를 외친다. 예수님의 샬롬을 외치는 목회자와 교인들은 좌파, 빨갱이가 됐다. 그것은 최근 미래목회포럼 주최로 한국전쟁 정전 70,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날 한국교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어떻게 봉사하겠다는 대안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발제자와 패널 모두에게서 예수님의 샬롬을 찾아볼 수 없었다. 북한왕조체제를 비판하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북한의 영적 이해와 복음통일이란 주제로 발제한 발제자나, ‘한국전쟁 정전 70,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이란 주제의 발제자나 모두 예수님의 평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 힘에 의한 평화는 남북한민족 모두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최소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평화(샬롬)을 외쳐야 한다. 그리고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 사마리아인 되어야 한다. 강도 만난 자를 보고서도 지나쳐버린 종교인인 대제사장과 레위인은 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서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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