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곤 목사.
김중곤 목사.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34-35)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과 너무 상반된 모습이다. 미움과 시기, 질투로 얼룩져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있다. 작은 문제에도 불 같이 화를 내거나, 실수로 벌어진 일에도 관용의 미덕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개인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기이하게 융합된 사회는 말 그대로 각박한 세상의 되어 버렸다. 가뜩이나 분열과 갈등의 세상의 더욱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오늘 각종 언론 사회면을 가득 채운 범죄 뉴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생면부지의 관계가 아닌 가족들 간, 즉 혈육의 범죄와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의 범죄가 점점 증가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함께 살던 70대 부친을 살해한 아들 사건을 비롯해, 흉기로 아버지를 살해한 뒤 유기한 아들, 심신미약 상태에서 자고 있는 모친을 살해하려 한 딸, 90세 노모를 폭행하는 100세 아버지를 말리다 숨지게 한 아들, 데이트폭력 신고에 불만을 품고 연인을 살해, 서울 한복판에서 헤어진 여자 친구를 때리고 차에 태워 납치하려 한 혐의 등 서로 아껴주고 보듬어줘야 할 가까운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 모두가 사랑이 메마르거나 없어져서 벌어진 일들이다. 비단 사랑의 부재는 가족들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가족 간의 유대가 무너지면서 나아가 사회의 구조마저도 붕괴시킨다. ‘의 개념이 너무 강해져서, ‘우리라는 개념이 쇠퇴하고 만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부족한 부분은 서로 상쇄하면서 메워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개인의 영역만 중요시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게 되면 국가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어떠한 문제에 맞닥트렸을 때 서로 협력해 풀어나가기 보다는 개인의 역량에만 맡기다 보니 어떠한 문제도 쉽게 해결하지 못한다. 급기야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 누가 옆에서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방관해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는 상생보다는 고립에 묻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오직 사랑만이 벼랑 끝에 내몰린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복잡할 수 있으나, 간단하다. 서로를 향해 위로하고, ‘용서하며, ‘인내하면 된다. 오늘 갈등은 모두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개인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상대가 왜 이렇게 까지 할까를 생각해 그를 먼저 위로하고, 나아가 내가 한 번 참으면 되지하며 인내하고, ‘괜찮아요. 그럴 수 있어요라며 용서하면 그 갈등은 금방 사그라진다. 그러면 상대 역시 화를 내거나 불평불만을 내놓기보다 선한 말과 행동으로 답하게 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버무리자면 배려하고, ‘아끼며’, ‘섬기면된다. 내가 먼저 낮은 자의 심정으로 배려하고, 상대를 아끼고 섬김을 보이면, 상대도 웃으며 대응한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더는 패륜적 사건사고가 벌어지지 않고, 사랑이 메말라 일어나는 중범죄도 사라질 것이다.

오래 참고 견뎠기에 이뤄진 사랑이라고 본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 가족과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대한민국은 사랑이 충만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라도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네고,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그를 먼저 생각하며, 무한한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연습을 해보자. 사랑이 충만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소망한다.

예장합동총신 총회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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