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대한민국 사회는 지금 설명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일어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정치권의 불신임은 날이 갈수록 커서 본인도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 입법권을 가진 의원들이 자신들의 비리와 범죄를 감추기 위해 그에 대한 방탄 법을 자가 제정한다는 소문은 가히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거론하기 민망스럽기도 하다. 윗물 격인 정치권의 유명인사들이 스스로 법을 어기면서도 빤빤한 얼굴로 하는 용어 중 정치적인 탄압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남용하면서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사실 국민은 그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먼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 당사자만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제발 정치인들이 당리당략과 방탄에만 몰두하지 말고 진짜 국민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사회환경 조성을 위해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교회는 나라를 위해 정치하는 분들이 국민을 우롱하는 것 보다는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하며 국민을 사랑하는 분들이 될 수 있도록 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교회는 교회를 이룬 신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 행정관서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을 찾아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교회가 교회 내의 신자들의 일에만 몰두하게 되면 사회의 어려움 해소는 밀려나게 되고 자연 외면할 수밖에 없다. 교회 건물에 높이 솟은 십자가의 첨탑은 이곳이 어려운 환경에 처한 자들의 피난처요 안식처임을 만방에 알리는 공표다. 특히 보이지 않는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괴로움을 가진 자들에게 마음의 짐을 덜어 줄 수 있는 신령한 곳이다. 
지금까지 교회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난하고 돌보는 자가 없어 고통 중에 살아가는 자들에게 쉼터를 자청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조금은 변질된 것 같아 아쉬움이 앞선다.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은 교회 내에 자리하였던 청소년들의 빈자리다. 즉 엠지 세대가 교회를 이탈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교회의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 왜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나야 하는 이유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초기 교회는 교회가 진심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한 결과 어려움에 처한 분들이 교회로 찾아왔을 때 현실적인 어려움 해소에 실질적 도움이 되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은 병든 자에게 고침을, 배고픈 자들에게 음식을, 어려움에 처한 자들에게는 그 어려움의 해소를 죄를 지어 멸망을 자초한 자들에게 죄의 용서와 심령의 구원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을 때 죽은 자에게 생명이 돌아오게 하는 기적을 허락하셨다. 따라서 현대 교회도 예수님 당시와 초대 교회 설립 때와 같이 사회문제를 교회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 교회로 몰려온 신자들이 가져온 문제가 곧 교회가 해결 해야 할 문제가 되어 교회가 이를 교회가 해야 일과 같이 외면치 않고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 것을 현대 교회가 재현해야 한다.

현대 기독교회가 해결해야 할 산적한 사회문제는 사회가 알아서 처리할 문제지 사회문제를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주변을 살펴 먼저 배고픈 자들을 외면치 말아야 하고, 몸이 아픈 각종 환자들을 파악하고 보살펴야 한다. 특히 독거노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홀 부모 가족의 애로사항을 발굴 해야 하고, 부모가 없는 고아나 소년 소녀 가장에 대하여 찾아가서 보살피는 복지를 실천해야 한다. 특히 이단이나 사교에 빠져 기독교에 대한 편견과 반감 가진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기독교에 대해 설명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가나안 교인(교회에 다니지 않고 교인이라고 하는 자)이나 플로팅 성도(이곳저곳 떠다니는 성도)들이 부쩍 늘어나는 현시대에 교회는 마땅히 그들이 교회로 돌아올 수 있는 교회에 대한 무관심을 바꾸기 위해 교회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교회가 도외시한다면 세상에 교회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 앞선다. 교회는 기존 출석하는 신도의 수가 아직은 교회가 견딜만 하며 수년간은 유지에 걱정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부터 교회는 지금껏 지향하던 교회의 방향을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교회를 떠난 이탈자들은 외면한 채 오육 십년대 심령부흥회처럼 교회가 새로운 이들로 채워지기를 바란다면 이는 잃어버린 양들에 대한 사랑의 결핍이요 무관심이나 다름이 없다. 

앞으로 교회가 생명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선 지금까지 구태의연한 방법이 아니라 엃어버린 양들을 찾기 위해 교회의 역량을 사용해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세상의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주의 몸된 교회가 세상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말로만 아니라 실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밝게 하는 교회로 말이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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