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묻는다

개꿈이라 해도 그렇지
산이 품에 들다니.
내가 그렇게 큰 인물이던가. 

산은 문을 달지 않는데 
산은 높이 앉아 멀리 내다보는데 
산은 잃고 얻는 것을 염려하지 않는데
내가 그렇게 의연했던가.

풀잎 이슬 한 방울
바닥을 기는 개미 한 마리가
산의 무게에 실리는 나일 것인데 
산이 덥석 안기다니.

진실로 내가 
오만과 편견 털고 풀이랑 살았던가. 
산이 기르는 나무같이 살자 하고
사심 없이 어깨 주고 살았던가. 
 
진짜 개꿈 꿨다고 
뒤에서 빈정대는 희미한 웃음소리
차마 바람소리라 말하지 못하겠네. 

-한국시인협회 『한국시인』 2023년호


 * 감태준 시인 :  문학박사. 『시와함께』 편집인. 
                       중앙대 문창과 교수 역임. 『현대문학』 편집장 및 주간 역임.  
                       윤동주문학상 기독시문학상 중앙대문학상 등 다수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현대시 특성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3연의 ‘산이 덥석 안기다니’에서 보듯 이 작품 속에 나타난 역발상 레토릭은 기지(위트)와 기상(컨시트)의 모본을 잘 보여준다. 

예술은 전달방법의 특수 방법과 효과를 통해 미학성을 확장하여 본의를 전달한다. 만일 내용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고전이나 종교경전을 뛰어 남는 작품이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내용도 좋고 표현도 좋다면 가장 최선이겠지만,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시에서 요구되는 형식상의 구조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연이나 행갈이만 한 산문이 될 것이다. 물론 산문의 기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시는 의도적으로 만들어 꼭 시에서 요구하는 형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면을 강조하는 비평영역이 형식주의 비평이라 하며, 러시아에 출발하여 미국 신비평학 시인들과 학자들에 의해 확증이 되었다.

이 작품은 한국어 리듬을 의탁하였기에 노래로 불러도 절창이다. 글자 수의 정형미보다 판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시조처럼 우리 언어의 율동미를 내재적으로 만족시켜주고 있어 더 금상첨화다.  또한 현대시에서는 기지나 역발상, 비틀게 쓰기, 낯설게 만들기 등 다양한 수사법을 추구한다. 앞서 말했듯이 시 전체가 그런 특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요즘 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이 작품을 들어 명시란 무엇인가를 이론적으로 시의 특징을 확인해보자고 했다. 시인은 개미와 같은 미소 이미지인 자아와 거대 이미지의 산과의 관계설정을 통해 현존(現存 da sein)에 대한 질문과 답을 형상화하고 있다. 즉 개미와 산의 이질적이고 상극적인 구조를 강제적으로 융합시켜 의도적인 기획으로 만든 작품이다. 특히 3연에서 입산(入山)이 아니라 산이 찾아오는 역발상이나, 마지막 연의 반어적 수사법으로 인간의 의지나 도전이 아닌, 크레그마(절대자의 은총)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구원이나 득도(得道)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절창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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