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헌 철 목사
서 헌 철 목사

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라 한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의 포성으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 한반도의 허리가 잘려진 체로 지금까지도 그 통증에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아픈 현실을 조롱이나 하는듯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나라인 ‘일제’는 또다시 재침략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교과서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도’ 문제를 거론하는 등 침략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왜국은 수 많은 침략을 당해 왔다. 그런데 그들이 또다시 그 망령들의 근거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음만 먹으면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 억지를 부리며 한반도를 발판으로 아시아를 자기들의 군화 발 아래 종속시키고자 하는 망령을 되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항의하고 목소리 높인다고 그들이 ‘그러자 없던 것으로 하자!’ 하리라 생각하는 국민이 있을까? 나아가 일본이 국제적 인식이나 동조를 얻어내고자 국제사법 재판소에 제소하면 우리가 국제적 동의를 받아낼 역량이 일본에 우선할까?

임진왜란 및 수많은 침탈이나 강점은 우리가 우리 땅을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지 않았기에, 36년간이나 이 나라를 일제의 군화발에 유린당했었단 말인가? 그들은 힘이 우월하다고 생각되면 ‘진주만’ 까지도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며 침략전쟁을 일으킨 자들이 지금에는 핵무기의 피해자라 주장을 하는 그들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

그러므로 율곡 ‘이이’가 주창했던 것과 같이 현대판 “10만 양병”을 생각하며 국방력을 증강 다시는 일제가 넘보거나 무시하지 못 하도록 해야 한다.

그저 1000원짜리 지폐에 ‘이이’의 초상화를 넣었다고 한반도가 지켜진다고 보는가? 그보다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실천적 정책이, 율곡 선생이 주창한 애국관이라 생각한다.

그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왜국이 침략해 올 것으로 생각하고 황윤길(통신정사)과 김성일(통신부사)을 왜국에 통신사로 보냈다. 그러나 서인인 황윤길은 왜국이 침략해 올 것이다. 동인인 김성일은 왜국이 침략해 오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여 동인과 서인들은 격렬한 논쟁만을 펼쳤고, 당시 조선은 군역을 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군의 질도 떨어져 이에 걱정을 느낀 율곡 ‘이이’는 잘 훈련된 십만 병사를 양성하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부정부패와 배부른 권력자들의 권력투쟁만 하다가 결국은 말도 안 되는 구실로 침략해 온 왜국의 노예가 되었다.

백에 백 마디 천에 천 마디 말을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왜국의 침략사들이 증명하지 않는가? 우리가 힘이 있으면 일본은 절대로 침략야욕을 갔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힘이 없으면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물론 기우에 불과하다고 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역사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지난 역사를 잊지 말고, ‘일제’의 침략야욕을 막는 유일한 길에 대하여 숙고하며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일본’에게 침략을 당할 수 있으며, 그 후로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재현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24-26).

한국장로교신학 연구원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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