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택 목사
김 정 택 목사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는 것은 어떤 행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올 때 어떠한 회개도, 어떠한 기도도, 어떠한 눈물도 없이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살아 나오는 것과 같다. 이는 죄와 허물로 죽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살리셨기에 이제는 살았기 때문에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빌 3:5-6에서 율법주의자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자라고 말하였으나 빌 3:7-8에는 율법도 귀한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배설물로 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9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의를 가졌다는 것인데,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를 믿는 우리도 믿음의 의를 가지고 있기에 구원받은 자라 고백하는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가 구원받았다는 것에서 머물러 있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기독교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았기에 믿음 외에 어떤 것이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빌 3:10에서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려는 이유를 오늘날 교회가 등한시하고 있다. 믿기만 하면 재림 때 부활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과 같은 믿음으로 부활을 믿었지만 부활한다는 조건을 모르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행 24:15에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고 하였기에 어떤 부활을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예수를 믿으면 예수께서 첫 열매가 되셨으니 당연히 우리도 부활할 줄로 믿고 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부활을 알려고 쫓아가는 이유는 빌 3:10에 그리스도의 죽음까지 본받으려 하기 때문이라 고백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명 자의 길은 사도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가 부활에 참여하기 위함이지만 부활에 이르려고 달려야 한다는 것을 전해야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에는 빌 3:14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는 것인데, 사도바울은 재림 때 상을 가지고 올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사도바울이 바라보고 달렸다는 상을 알지 못하고 믿으면 된다는 것만 강조한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이 상에 대하여 빌 3:21에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는 상이라 말하고 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은 빌 3:20에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말한다. 즉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다는 것은 하늘의 시민권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권을 가졌다면 그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영광의 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기에 시민권으로 끝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합동총회신학신대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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