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성 교수
김 재 성 교수

교회가 모임을 갖지 않으면, 우리의 재림 신앙과 하나님 중심의 삶은 황폐한 상태로 변질될 것이다. 반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경건한 모임을 갖고 간절히 기도하는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마냥 고난과 슬픔 속에 버려두시지는 않는다 (히 13:5). 우리 성도들 사이에서도 교회의 다른 동료들을 무시하거나, 그냥 간과할 수 없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다른 성도와 의견이 심하게 차이가 나거나, 서로 느끼는 감정이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해서, 교회를 떠나버리는 행위를 금해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 개인주의, 이기주의, 자아집착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다른 성도에 대해서 무관심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거역하는 행위이자, 배교의 행위와 같은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나오는 ”모임“은 과연 무엇을 위한 집회인가? 여기에 ”교회“라는 단어, ”에클레시아“가 사용되지 않았음에 유의하여서, 성도들에게 참석하도록 격려하는 모임은 아마도 각 지역의 회당(synagogue)에 속한 기독교인들의 추가적인 집회와 모임이라고 해설하는 주장도 있다. 이미 문맥에서 채택된 단어를 검토하면서, 교회라는 단어가 없으므로, 혹시 회당에서, 즉 아직은 교회로는 완전하게 차별화가 되어진 모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어쩌면 초대교회의 모임은 회당 주변에서 모이던 작은 공동체의 회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자주 언급되어졌듯이, 초창기 교회는 이방인들의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고, 흩어진 유대인들이 모이던 회당과 같이 작은 모임을 통해서 발전하였다. 주후 70년경, 예루살렘이 무너진 후, 가이사랴, 안디옥, 에베소, 로마 등 사도들은 여러 형태의 초대 교회를 건설해 나갔다. 사도 바울은 수없이 회당에 들어가서 전도했었다. 초기 형태의 교회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에, 유대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된 성도들은 회당에 모였을 것인데, 아마도 각 지역에서 교제의 모임을 가졌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회당“이라는 장소도 역시 오늘날로 말하자면, 유대인들의 지역별 종교집회소였는데, 초대 교회의 예배당 규모는 이들보다 훨씬 적었다. 이방지역에 살던 유대인들 상당수가 사도 바울처럼 기독교인으로 개종했을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배경과 당시 상황에 근거하여서,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나오는 모임이라는 것을 이렇게 회당 집회 이후의 소그룹 모임으로 해석할 때에도 명확하게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으리라 추정되어지는 ”회당“이라는 단어도 역시 여기 본문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초대교회는 회당과는 정체성이 완전히 달랐다. 그 두 그룹은 서로 본질상 완전히 다른 공동체였다. 

히브리서 10장 25절의 모임을 ”가정집에서 모이던 교회의 집회“, ”가정교회“(house church)로 해석하는 신학자도 있다. 비록 초대교회 시대에는 교인들의 규모가 아주 작았을지라도, 또한 그들이 모이던 장소도 역시 비좁고, 열악한 곳이었든지 간에, 혹 신앙심이 돈독하면서도 약간 넉넉한 중산층의 집이었을지라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공적으로 인정된 장소였을 것으로 본다.      
            
<계속>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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