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성서 연구에서 우리말 존대법은 원문과 동떨어진 이해와 해석을 낳을 때가 있다. 예컨대 시편 23의 4절을 보면 이렇다. 히브리어는 ידמע התא-יכ(네가 나와 함께)로 영어 ‘for you are with me’는 원문에 충실하나 한글 번역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로 옮겼다. 히브리어 주어가 분명 2인칭(התא)인데도 우리말 ‘주께서’는 마치 3인칭처럼 들린다. 때로 한국어 경어체나 존대법이 히브리 신앙의 경신 사상이나 예법을 표현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어 대명사는 히브리어와 서양언어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한글로 옮길 때 적절한 대응어를 찾기 어렵다. 특히 하나님을 2인칭으로 표기할 경우 번역어 ‘너’ 또는 ‘당신’으로 쓸 수 없으니 한글 번역은 3인칭격인 ‘주,’ 또는 ‘주님’을 채택하게 된다. 이렇듯 경어체 번역은 원문과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어서 주석 과정에서 반드시 원문으로 확인해야 한다. 

시편 74는 전형적인 탄원시의 특징을 따른다. 시인은 1절과 10-11절에서 하나님 부재와 원수들의 공격에 대하여 거칠게 탄식을 쏟아낸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1절).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10절). 길게 이어지던 탄식은 갑자기 찬양으로 분위기가 바뀐다.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며 이 땅에 구원을 베푸셨나이다”로 시작되는 찬양은 12-17절까지 계속된다. 문제는 탄식과 찬양의 대상이 다르게 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시인은 시편 74의 1연 1, 10, 12절에서 ‘엘로힘’(םיהלא)으로 하나님을 지칭하다가 2연 12-17절에서는 직접적인 대상 ‘당신’(התא)으로 바꾼다. 더구나 2인칭 ‘당신’(התא)은 공교롭게 일곱 차례 쓰였기 때문에 그 상징성과 의미를 더 크게 생각하게 된다. 시인이 신명을 3인칭 ‘하나님’에서 2인칭 ‘You’(התא)로 다르게 쓴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막 연 18-23절에서는 다시 3인칭으로 돌아가는데 야웨(הוהי)와 하나님이 한 번씩 나온다. 

호신(呼神)에서 3인칭 하나님과 2인칭의 차이는 분명하다. 우선 3인칭 호신은 ‘나와 너’의 즉자적 관계보다 제3자적 위치로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2인칭 단수 아타(התא)는 ‘나와 너’의 직접적인 대상이며 또한 동시에 체험에서 기인한 호칭이다. 영어 You에 해당한다. 안타깝게도 한글번역은 존대어로 표기하였기에 원문의 어감을 살리지 못한다. 하나님을 ‘주께서’라고 번역하거나 14절은 아예 생략하였다. <새한글> 시편만 “주님이 친히 깨부수셨습니다”라고 원문을 반영하였다. 

당신(התא)은 바다를 가르셨다(13a).        
당신(התא)은 리워야단의 머리를 깨뜨리셨다(14a).
당신(התא)은 바위를 쪼개셨다(15a).        
당신(התא)은 강물들을 마르게 하셨다(15b).
당신(התא)은 빛과 해를 마련하셨다(16b).    
당신(התא)은 땅의 경계를 세우셨다(17a).
당신(התא)은 여름과 겨울을 지으셨다(17b).

시인은 하나님의 침묵과 원수들의 공격과 만행 앞에서 깊은 탄식을 내뱉다가 문득 왕이며 구원을 베푸시던 기억을 떠올린다(12절). 누군가 알려주던 간접적인 3인칭 하나님이 아니다. 

시인 자신의 직접 대상인 2인칭 하나님을 만난 확신이 읽힌다. 그렇기에 1연을 연 절망적인 장탄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느새 확신에 가득한 역사적 고백이 넘쳐난다. 

이와 같이 일곱 번에 거처 주어로 등장하는 ‘당신’(You)은 일련의 동사와 함께 태초에 있었던 창조와 관련되어 혼돈과 공허의 세력을 제어하며 조화와 질서의 세상을 만드는 주체다. 가르다(사 24:19), 깨뜨리다(겔 29:7), 쪼개다(사 48:21), 마르게 하다(사 19:5; 42:15; 겔 37:2,4), 세우다(시 119:5; 사 2:2), 터를 놓다(출 15:8. cf. 욥 38:8; 렘 5:22), 빚다(창 2:7, 19) 등등이다. 뒤의 세 동사는 기초를 놓고 기둥을 세우는 등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앞의 네 동사는 혼란과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우주 전쟁(chaoskampf)을 반영한다. 야웨의 왕권은 세상 창조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시편 74:12-17에 연거푸 등장하는 ‘당신(התא)은 구약성서에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권능을 체험적으로 고백하기 위한 호칭이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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