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평화(샬롬)는 어디로

6월은 호국의 달이다. 6일은 현충일이고, 25일은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3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은 광복 78, 분단 78년을 맞았다.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의 핵개발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남한의 보수적인 일부 인사들은 강력한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며, 남한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중심에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있다. 한마디로 오늘 대한민국은 평화를 잃어버렸다.

그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평화(샬롬)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데올로기에 갇힌 빌라도와 유대인만 보인다. 모두가 자유와 민주를 내세워 힘에 의한 평화, 로마 팍스를 외친다. 분명한 것은 힘에 의한 평화는 남북한의 무기증강경쟁을 불러일으키며, 공멸의 길로 가는 길이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 연합단체 간에 일어나는 분쟁도 마찬가지이다. 총만 들지 않았지 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오늘 분쟁이 일어나는 교회에서 목도한다.

그렇다보니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모두가 긴장 속에서 살 수밖에 없고,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남북한 민족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될 수 없다. 한국교회 역시 성령 안에서 하나 될 수 없다. 모두가 성령을 몰각한 결과이다. 이것은 또한 예수님의 평화(샬롬)에서 이탈한 것이다. 모두가 로마 팍스(힘에 의한 평화), 아메리카 팍스, 차이나 팍스, 재팬 팍스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남북한 민족은 성령 안에서만 하나 될 수 있고, 예수님의 평화(샬롬) 안에서만 하나 될 수 있다. 때문에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내린 평강, 예수님의 샬롬 속에서 살아야 한다. 지난 61일부터 14일까지 세계기독교총연합회가 주최하고, 대한민국이주민희망봉사단 주관으로 열린 다문화가정초청 부부세미나 및 위로행사에서, 이주민들의 입에서 예수님의 평화(샬롬)을 외치고 나선 것은 힘에 의한 평화를 입에 달고 사는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빌라도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관념·제도 벗어나라
예수님의 평화
(샬롬) 분단된 이 땅에서 실현하자

수명을 다한 구한말을 되풀이 하지 말자

동족상잔의 비극 73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독일 통일의 중심에 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이것은 분단된 조국, 대한민국에 세워진 10만교회가 해야 할 일이며, 가야할 길이다. 그래야만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분쟁도, 단체 간의 갈등도, 국민화합도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미완의 광복을 완성하는 것이기에 매우 절실하다. 성령 안에서 남북한 민족이 하나 되라는 예수님의 준엄한 명령이기도 하다.

이를 방해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죄에 올아 멜 궁리만 하는 바리새인과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서 우리는 갈라지고, 분열된 땅에서 영원히 살 수밖에 없다. 오늘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강대국들의 패권싸움은 수명을 다한 구한말 조선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구한말 부패한 이 땅의 정치인들은 정쟁만을 일삼다가 일본에 집어 삼키고 말았다. 그 결과 우리민족은 36년 동안 이들 때문에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고난을 당해야만 했다. 남북분단이라는 아픔도 가져다가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군상들이 바로 대한민국 정치인이며, 교회이다. 대한민국을 침략한 일본은 대한민국과 동맹을 맺을 수 없다. 공산국가인 중국도, 북한도, 러시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6.25한국전쟁 당시 UN군으로 한국에 들어와 젊은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서 희생을 당했다. 미국은 우리와 혈맹관계이며, 우방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패권싸움, 국내의 국론분열 등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들에게서 예수님의 평화(샬롬)을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로마평화(팍스)를 내세운 빌라도의 이데올로기, 유대교의 종교적 관념과 제도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

광복 78주년, 남북한 분단 78, 6.25한국전쟁 73돌을 맞아 본지는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성령 안에서 남북한 민족이 하나 되는 행진을 벌이자고 제안한다. 독일교회처럼 한국교회도 분단현장에 있어야 한다. 오늘날 세계는 교회가 종교전쟁의 중심에서 종교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인도 마니푸르주에서 일러난 부족 간 유혈 충돌 역시 겉으로는 부족 간의 충돌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독교와 힌두교 간의 유혈충돌이다.

이로 인해 기독교인 수백 명이 살해당했다. 도시에 사는 메인부족들하고, 산속에 사는 부족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면서 교회가 많은 피해를 입었다. 마니푸르주는 힌두교인 50%, 기독교인 40%로 구성되어 있다. 교인 수가 엇비슷해지면서, 힌두교인들의 반발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소수부족 가옥 수천 채가 불에 탔다. 소수부족들은 살아남기 위해 파키스탄, 네팔, 부탄 등으로 피난을 떠나는 처지에 놓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기간에 끝날 것 같이 보였지만, 1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전쟁은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러시아와 서방의 전쟁이다. 전쟁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전쟁은 종교지도자 또는 힘 있는 자에 의해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교회 싸움도 힘 있는 교회지도자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교리와 제도를 만들어 정적을 없애기에 바쁘다. 국민 분열도 정치지도자들에 의해서 발생되었다는 사실.

빌라도의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되라

오늘 대한민국은 진영싸움으로 인해 분열과 갈등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그 중심에서 교회도 한 몫을 감당하고 있다. 오늘 대한민국의 진영싸움, 이념갈등 등은 남북한이 하나 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남북한 민족 모두가 로마 팍스를 부르짖으며, 남북한 민족 간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것은 분열의 아픔이며, 남북한 민족의 아픔이다. 성령을 몰각한 결과이다. 그 어디에도 예수님의 평화(샬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 대한민국, 한국교회는 빌라도와 유대인의 이데올로기와, 제사장들이 만들어낸 제도와 교리만 보인다. 그렇다 보니 오늘의 세계는 너를 죽여야만 내가 사는 세상이 됐다. 한국교회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노사 간의 갈등, 계층 간에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보혁 간의 갈등, 이념갈등,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갈등, 지역갈등 등을 부추기며, 가진 것을 지키기에 바쁘다.

교회는 가진 자, 기득권자, 권력자들을 대변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세상의 종이다. 그러면서 겉으로 성령으로 하나 되자고 말한다. 샬롬을 외친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이율배반적이다. 현실세계를 외면한 한국교회는 성장이 멈춘 지 오래다. 세상의 힘없는 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에 대한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미래로 나가지를 못하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종교적 제도와 이념에 갇혀 북한을 무조건 적대시하며, 북한 당국자의 말만 서운하게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여 왔고, 보이고 있다. 히틀러는 유대인 500만명을 죽이는데 절대로 혼자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유럽 기독교인들의 유대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라는 관념이 유대인 500만명을 학살했다. 오늘 한국교회 대부분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북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과 공산주의는 무조건 싫다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늘 한국교회의 중대형교회 목회자들은 담임목사 세습을 아무렇지 않게 단행한다. 교회법에 저촉된다며 편법도 동원한다. 이들은 이념갈등에 매몰된 빌라도와 유대인의 이데올로기, 제사장의 제도와 교리와에 갇혀 사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결과이다. 성령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하나 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양심 있는 목회자들은 성령 안에서 용서하고, 화해하고 하나 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과 민다나오 평화 중심에 종교가 있었다

그렇다 오늘 한국교회는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분명 혼자만 하나님나라에 가겠다는 속셈이 아니고서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나라는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가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남북한민족. 나아가 세계민족이 함께 가야 하는 곳이다. 이들도 우리의 구원의 대상이다. 우리가 전도하고, 세계선교에 나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 안에서 하나 되라고 교육하고 있다. 독일통일의 중심에 독일교회가 있었다. 오늘 대한민국 보수진영의 단체와 교회의 목회자들은 복음통일, 자유통일을 외친다. 반면 진보적인 단체와 교회의 목회자들은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외친다. 이렇게 한국교회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져 서로를 비난하며, 이데올로기에 갇혀 살아간다. 교회도 이념적 갈등으로 인해 하나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서 남과 북의 분열, 동서의 분열, 교회의 분열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기에는 조심스럽지만, 오랫동안 종교전쟁으로 많은 사상자를 낸 필리핀 민다나오 평화의 중심에 신천지 이만희 회장이 있었다는 사실. 이 회장은 천주교 대표와 이슬람 대표, 그리고 기독교 대표를 만나 만다나오 평화의 중요성을 제기하고, 평화협정조약문에 서명을 이끌어 냈다. 이날 민다나오 주민들은 거리로 나와 민다나오의 평화를 외쳤다. 그렇다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중심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성령을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예수그리스도를 따르고 섬기는 제자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분명 그리스도인은 예수그리스도의 평화를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배웠으면, 그 가치를 익히고, 삶의 현장서 실천해야 한다. 분단된 한반도, 분열된 이 사회와 교회서 말씀, 예수님의 샬롬은 절대적이다. 여기에서 이탈한 그리스도인 군상들은 세상의 종이며, 적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면, 하나님은 남한민족의 하나님이며, 동시에 북한민족의 하나님이다. 또한 세계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다. 하나님나라는 혼자의 힘으로 구현할 수 없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구현해야 한다. 지구상 모든 민족이 함께 하나님나라를 실현해야 한다. 이것이 성령이며, 성령 안에서 합일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대화하고, 또 대화해야 한다.

78년간의 반목과 갈등이 하루아침에 해소될 수 없다. 남북한 당국자, 남북한 교회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문제이다. 그래야만 글로벌시대, 세계를 품을 수 있다. 미래,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초대교회는 갈라진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 회의하고, 정적들과 대화했다. 하나님은 화해를 위해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 여기에는 이방인도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담겨 있다.

유대인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자

초대교회가 부흥하고, 칭찬받은 것은 서로 화해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음의 가치를 공유했다. 장로들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대화하고, 성령 안에서 합일을 이루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 교인들의 신앙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이런 초대교회의 신앙에서 이탈, 분열하며, 갈등을 일삼는다. 자기중심에 갇혀, 기득권에 갇혀, 혼자만 하나님나라에 가겠다고 아우성친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보수적인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은 남북한 간의 싸움을 부채질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으니, 남한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힘의 논리를 펼친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샬롬(평화)을 외치기보다도, 힘에 의한 평화, 로마 팍스를 외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가치와 복음이 되었다. 대부분의 보수적인 목회자와 교인들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에 갇혀 경제보복을 단행한 일본, 대한민국을 침략한 일본을 향해서는 우호적인 입장을 보인다. 같은 민족인 북한에 대해서 무조건 적으로 간주한다.

여기에는 관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심지어 동서분열을 조장하며, 자기진영이 아닌 사람을 빨갱이, 용공, 좌경, 간첩으로 몰아붙인다. 더욱이 우스운 것은 경제보복을 단행한 일본을 향해 사죄 한다, 반민족적인 모습을 보이는 권사도 있다. 이들이 애국자가 되는 세상이 됐다. 일본은 우리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 징용자들에게 사과한번 하지 않았다. 용서를 빌어야 용서해 줄 수 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원시국가의 틀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 감사해야 할 이웃나라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미국 대통령에게 빌어 붙어 미국과 한국 간에 이간질을 시킨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매우 곤궁한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가슴 아픈 일이다. 이들은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여기에다 동경전력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핵 쓰레기를 태평양에게 버리겠다고 한다.

침략국가인 일본은 이웃나라로 함께 살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함께 살아야 할 이웃나라이라는데 안타깝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향해 돈을 벌기 위해서 매춘부를 자원했다고 막말을 쏟아 내는가 하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일본과의 동맹을 촉구한다. 일본은 대한민국과 동맹을 맺을 수 없는 침략 국가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그러고서도 보잘 것 없는 사람과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하나님의 참사랑=기쁜소식)을 선포할 수 있겠는가.

성령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자

남북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반대하는 나라 일본을 향해 사죄니, 동맹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타락한 종교인은 종교에만 충실 한다. 그렇다보니 선을 가장한 무능함만 보인다. 이들은 힘없는 국민이 억울함을 당해도 말 한마디 못하는 위선자, 가짜선지자이다. 모두가 우상 천왕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진리를 망각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목회자와 교인들은 성령을 받았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이것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친일적인 정치인과 목회자, 교인, 기자, 학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이들은 나라를 지켜야 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스스로 저버렸다. 이것은 남북분단이 가져다가 준 아픔이다. 그래서 남북한 민족 스스로 민족의 문제를 외세의 도움 없이 해결하라는 것이 아닌가. 특히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남북한의 대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오늘도 성령께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오늘 대한민국의 기득권자로 자리 잡은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돌아와야 할 사람을 잊은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는 구약성서 이사야 621-7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왔다. 헌데 이스라엘 민족은 돌아와야 할 같은 민족을 잊고 있었다. 오히려 이들이 돌아오는 것을 귀찮게 여겼다. 기득권자로 등극한 것이다.

성령 받은 사람이라면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성찰해야 한다. 이웃이 어느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해야 한다. 함께 슬퍼하며, 위로해야 한다. 매사 긍정적인 삶을 살며, 이웃과 평화를 이루려고 해야 한다. 오늘 그리스도인 중 대부분은 한국교회와 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기도하자며, 나라와 민족, 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구국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남북한 민족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될 것을 촉구한다. 이런 행동하지 않는 기도는 결국 허공을 치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항상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행동하셨다. 하나님은 애굽의 파라오 밑에서 고난당하는 히브리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셨다. 그리고 이들을 가나안복지로 인도 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은 1천년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야훼 하나님을 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하나님나라를 갈망했다. 한국교회 역시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하나님나라를 갈망해야 한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약속을 잊지 않게 하기위해서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 하나님께 간청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 되는 것을 귀찮게 여겼던 사람들이 깨닫게 기도하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키고, 통일 이후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깨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갈망하자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도하는 민족은 미래 하나님나라에 대한 꿈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가지라고 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한 꿈을 빌어보자. 우리민족은 일제 36년 이전부터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우리의 땅에서 논의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외세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고, 지금도 결정되고 있다. 한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민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이용만 당해 왔고, 당하고 있다.

험악한 세계, 적대자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의 성직자들은 이제라도 예언자 스가랴처럼 화평과 진실을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교회 교인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던 미국 대통령에게서 진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미국 대통령에게서 우리는 세계평화도, 미국평화도, 한국평화도 기대 할 수 없다. 이런 미국 대통령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일하는 대한민국의 지도자, 대한민국의 성직자들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참담하다.

이들은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한민족의 화해를 외치는 목회자와 교인들을 향해 빨갱이’, ‘좌파’, ‘용공으로 매도한다. 이들을 교회에서 추방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일부 보수적인 목회자들은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리고, 피 묻은 손을 위해서 기도하는 잘못을 범했다. 분명한 것은 일부 한국교회는 과거에도, 지금도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반통일적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회개하고, 예언자전통의 진실 된 화평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화평을 위해서 봉사하는 교회

이것이 예수님의 길이며,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예수님의 삶의 현장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이었다. 그래서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라고 한다. 교회는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자.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자.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자.

사도 바울은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려워하라. 겸손하라고 말했다. 우리가 겸손하지 않고, 자기를 나태나면, 그 사회와 교회는 갈등만을 키운다. 사회와 교회는 분열되었고, 분열되고 있다.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오늘 십자가 철탑을 높이는데 경쟁을 벌이는 한국교회에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는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은총 입은 자만이 하나님나라에 참여할 수 있다. 세상의 변화도, 교회의 변화도, 개혁 없이는 기대 할 수 없다. 개혁 없이는 복음이 열리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회개) 한다. 그것은 성령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다. 세례요한은 예루살렘의 기득권자를 향해서 회개하라고 했다. 예수님도 바리세파와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했다.

그러나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이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돌아서지 않고서는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없다. 대한민국의 기득권자들은 경제부국이 된 이 나라에서 마냥 행복하다.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세상은 절대로 도래하지 않는다.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라도 벽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세상, 미래로 나가자.

예수님의 삶의 현장은 한민족의 소원이며, 염원인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분단의 현장이 아닌가. 광복 78, 분단 78, 동족상잔의 비극 6.25사변 73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평화(샬롬)를 노래하며, 성령 안에서 남북한민족이 합일을 이룰 수 있도록 행동하자. 기도하자. 소리치자.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된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이다. 하나님은 한에 맺힌 시림들의 한의 소리를 듣고 행동하신다는 것을 깨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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