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세계는 지금 핵무기 확산으로 미래의 시계는 계속 앞당겨지고 있으며 이제 12시 4분 전을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최근 뉴스에 미국 3740여개, 러시아가 4300여개, 중국 470여개, 북한 30여개(170개예정)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인 지형을 보면 대한민국은 핵으로 둘러싸여 있어 삶에 대한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실정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대한민국도 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미국발 여론이 아주 민감하게 작용하기도 해 의미심장한 여론이다.
한국기독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말과 같이 지구의 종말을 재촉하는 무기 전쟁이 현실이 되어가는 와중에 그래도 교회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인 성전 건축하는 일에 올인 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지도자들이 상당수 있다. 이천 년 전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도마가 인도에 선교를 나온 이야기 중 오늘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야기를 되새김질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인도의 군다포러스왕 때 도마가 인도 선교 여행을 했다. 도마는 목수 기술자여서 인도 왕이 왕궁 건설을 위해 인도로 초청되어 왔다고 한다. 도마는 왕으로부터 새로운 왕궁 건설을 위해 일부 건축 자금을 받아 현재 왕궁과 거리가 좀 떨어진 곳을 선정하여 건설하기로 했다. 도마가 왕궁 부지를 찾기 위해 나서는 길에 굶주림에 허덕이는 수 많은 빈민들을 만났다. 도마는 일차 건설 자금 받은 돈으로 인도에서 가장 낮은 카스트인 불가촉천민들을 상대로 구제 활동을 폈다. 그리고 왕궁으로 가서 왕으로부터 건축자금을 모두 받아 모두 구제금으로 사용했다. 왕이 왕궁의 건축을 보자고 하여 도마는 왕을 모시고 현장으로 갔다. 거리가 꽤 먼 곳으로 온 왕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왕궁 건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왕이 화가 나서 도마에게 많은 돈을 들여 지은 왕궁은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도마는 왕께서는 지금은 그것을 보실 수 없습니다. 왕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나 그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은 그제야 속은 줄 알고 신하들에게 도마를 체포하라고 한 후에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처형 일을 정했다. 처형 전날 밤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준 왕의 형님이 꿈을 꾸었는데 자신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는데 동생의 집은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초 화로운 왕궁처럼 지어졌고 자신의 집은 초라한 집이었다. 꿈에서 깬 왕의 형은 화가 치밀어 다음날 당장 부하를 보내어 동생인 왕에게 따져 물었다. 왜 나의 집은 초라하고 너의 집은 왕궁처럼 크고 호화롭게 지었느냐고 항의했다. 그제야 왕은 도마의 일을 생각했다. 이미 도마는 사형장 단두대에서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왕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대기하고 있었다. 처형 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갑자기 왕의 어명을 전달하는 자가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와서는 잠시 멈추라고 했다. 왕은 사형수인 도마를 왕궁으로 불러 자초지종을 들었다. 바로 지상의 왕궁보다는 빈민들을 구제함으로 하늘에 보화를 쌓도록 했다는 사실이 진실임을 알고 왕은 도마의 복음 전도를 도우며, 도마를 기념하여 기념 교회를 짓도록 했다는 이야기다. (예수의 열두 제자, 윌리암 바클리, 성문학사 1972, 61-75 –글쓴이가 각색하였음.)

이 기록은 전설적인 이야기와 같기는 하나 예화가 들려주는 의미가 심오하다. 오늘날 보이는 교회 건축만이 하나님께 영광임을 믿고 목회의 지상 과제로 생각해 거룩한 성전을 건축하는 일임을 신앙처럼 믿고 있는 지도자들과 신자들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기독교도들이 모여 드리는 예배당이 보이는 건물이 교회인가? 아니면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구원받은 영혼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모임인가? 아직도 보이는 교회(성전?)을 말함인가? 그것도 중대형 교회 건물 건축하는 일이 지도자들의 로망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대다수가 아닌가? 성경에서 원하는 교회는 무엇인가? 세상에서 죄로 죽은 영혼이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거듭난 무리가 교회 아닌가? 그것도 몸 된 교회가 먼저 구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분들은 세상에서 소외된 가난하고 병들고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돌봄의 대상인 빈민들이 아닌가? 

그런데 세상에서는 크고 아름답고 훌륭하게 지어 놓은 건물에서 목회하면 성공한 종교인으로 예우를 받는다. 이를 출세요 성공으로 여기는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있는 한 교회는 여전히 영혼이 거듭나게 하는 생명 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외형으로 겉보기에 잘 지은 건물을 짓기 위해 신자들의 골육을 짜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도마가 먹고 살기 힘든 빈민을 위해 왕궁 건축 자금을 유용한 것은 세상 법으로는 위법하다고 여길지 모르나 오늘 교회에 주는 교훈은 심오하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눅16:9) 는 의미를 알게 되는 것 같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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