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 연 교수
장 보 연 교수

초저출산은 교회성장의 기초가 되는 어린이주일학교에 소멸위기를 가져다가 주고 있다. 교회도 소멸되고, 교회의 고령화는 빠르게 되고 있다. 젊은 교인이 사라지면서, 주일학교 교사 수급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늘 현장 목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회자들은 교회가 성장했던 70-80년대 한국교회가 어떠한 일을 하면서, 성장했는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당시 대부분의 교회는 맞벌이부부와 가난한가정의 자녀들을 돌봐주기 위해 ‘어린이선교원’이라는 것을 운영했다. 또 부유한 교회는 유치원을 운영, 교회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어린이선교원과 유치원은 지역사회 주민들과 교회와의 가교적인 역할을 감당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는 곧 교회성장의 원동력이 됐으며, 지역주민들로부터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교회가 지역주민의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면서, 어려운 사람들이 교회에 기대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경제적 삶도 누렸다. 특히 선교원과 유치원을 다닌 어린이 대부분은 교회로 흡수됐다. 한마디로 어린이 주일학교가 왕성했던 것도 선교원과 유치원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교원과 유치원은 교회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지역사회 미취학 아동들을 돌봐주고, 예수님 안에서 참교육과 참사랑을 실현하는 교회 부속기관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오늘 60-70대 교인들은 마음 놓고 아이를 선교원과 유치원에 맡겼던 당시를 기억한다. 이것은 추억이 아니다. 당시의 구체적인 어린이 선교전략이었다. 선교원과 유치원은 어린이 돌봄의 역할을 국가를 대신해서 교회가 감당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정부로부터 재정을 지원 받기도 했다. 이 재정은 교회건축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일부 교회는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을 악용해 문제를 일으킨 것도 부인하지 않는다. 

70-80년대 교회성장은 지역사회와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교회들이 어린이 선교를 위해서 그만큼 시간과 재정, 인적자원을 투자했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에 대한 이미지 쇄신은 물론, 교회성장의 신선한 방향을 일으켰다. 그 이전인 선교초기, 일제 36년, 해방, 6.25한국전쟁 당시를 돌아봐도 한국교회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어린이주일학교에 대해서만큼은 많은 재정을 투자했다. 

그것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국가와 교회의 미래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어린이주일학교 투자는 미래 교회성장의 토대가 되고, 어린이 신앙교육을 교회가 책임진다는 의미가 있었다. “어린 시절 성탄절 날 교회에서 주는 과자를 먹기 위해서 교회에 나갔다”는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는 당시 교회가 어린이 주일학교에 대해서 얼마만큼 관심을 가졌는가를 단번에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는 분명 교회성장의 토대가 됐다. 왕성했던 어린이주일학교는 60년대를 거쳐 70-80년대 한국교회 성장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60대 이상의 어르신 대부분은 과거 교회에 한번 이상 나갔다고 술회하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이런 어린이주일학교가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함께 쇠퇴의 길을 걸어 왔고, 걷고 있다. 일부교회의 주일학교는 이미 소멸됐다. 
이제 한국사회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과자를 먹기 위해서 교회에 나가지는 않는다. 때문에 교회도 사회와 가정이 변화되어가는 만큼, 교회, 특히 어린이 주일학교도 변화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변화된 시대적 상황에 따른 목회계획을 수립하고, 어린이 선교전략을 세워야 한다. 사실 1990년대까지 각 단체마다 열던 어린이캠프 등 어린이전도프로그램은 자취를 감추었고,  90년대 초까지 성행했던 어린이선교원도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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