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 원

등단했다고, 시상식에는 꼭 가봐야겠다고 서울 달동네 사는 친구가, 스물네 시간 맞교대하고 최저임금 받는 친구가, 심야 버스 편으로 돌아가 새벽 출근할 친구가, 온돌처럼 밑바닥 따신 시를 쓰라며 건네준 구겨진 봉투 하나 꽃을 못 사 왔다고 꽃값으로 생각하라고, 종일 몸으로 덥힌 만 원 한 장 오천 원 두 장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며칠 전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차가 물위에 떠서 가는 느낌이 들 만큼 비가 퍼부었다. 그리도 장대비 내렸던 그날,‘시를 가장 사랑하는 화가’라는 별칭이 있는 정창기 화백을 만나러 갔다. 천진난만한 그의 표정을 보니 운전 중에 굳었던 근육들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 비는 계속 퍼부었고 이야기는 훈훈하게 꽃을 피웠다. 눈과 가슴에 담아내기 벅찬 좋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보는 기쁨이 충일한 시간이었다. 오래토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림에 얽힌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돌아가야 할 즈음이었다. 그가 환히 웃으면서 선물을 내밀었다. 느티나무에 자신의 글씨를 새겨 넣은 작품이었다.“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공자의 君子三樂군자삼락 중 두 번째 기쁨에 해당하는 구절이다. 집에 돌아와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내게 이런 친구가 몇이나 될까?

시의 제목이“이만 원”이다. 돈을 제목으로 선택한 시는 드물다. 그래서 궁금증이 발동한다. 시적 화자는 시를 쓰는 시인이다. 등단에 대한 스토리가 담긴 시다. 시인에게는 등단을 하는 것 만큼 기쁘고 설레는 일이 없다. 시인으로서 꿈을 꾸고 시를 지으면서 얼마나 등단을 간절히 기다렸겠는가. 그런 둘도 없이 좋은 날, “서울 달동네 사는 친구”가 축하해 주러 가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신 선물을 준 것이다. 바로 “이만 원”이다. 시인은 시적 화자를 통하여 자신의 소중한 친구에 대하여 구구절절 설명을 한다. 어떤 친구인가. “스물네 시간 맞교대하고 최저임금 받는 친구”이자 “심야 버스 편으로 돌아가 새벽 출근할 친구”이다. 친구의 삶이 정말 녹록치 않다. 하루하루 힘겹게 돈을 벌며 생활하는 성실한 친구다. 그런 친구의 선물이니 귀한 마음으로 받았다. 

좋은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인생은 성공했다는 말이 있다. 좋은 친구란 어떤 친구일까. 슬프거나 기쁘거나 언제 어디서든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일까. 아니면 나의 결점을 참고 견뎌 주는 친구,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는 친구일까. 좋은 친구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 등장하는 친구는 참 좋은 친구로 느껴진다. 시에서 친구가 선물을 주며 특별히 부탁한 말이 주목을 끈다.“온돌처럼 밑바닥 따신 시를 쓰라”진정 하고 싶은 말이었으리라. 온돌처럼 서서히 데워지는 따스함을 지닌 시가 필요한 시대다. 쉽게 흔들리고, 쉽게 비난하고, 폭언과 허언과 같은 말잔치가 난무한다. 말의 수난 시대를 건너기 위해서는 이런 좋은 시를 자주 읽어야 할 것이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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