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창세기에 의하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 선언으로 드러난다. 곧 빛과 어둠, 해와 달 등은 ‘있으라,’ ‘나뉘라,’ ‘드러나라’ 등처럼 하나님의 명령으로 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명령이 아니라 야웨 하나님이 ‘흙의 먼지’로 창조하셨다고 밝힌다(창 2:7). 히브리어 동사 ‘말하다’(רמא)는 창조자의 위엄을 강조한 표현이지 구체적인 창조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 이른 바 ‘말씀의 창조’는 뜻밖에도 시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의 말씀으로 하늘이 펼쳐지며 그의 입김으로 모든 별이 생겨났도다. 
주가 말씀하시니 이루어졌으며 그가 명하시니 견고히 섰도다.(시 33:6, 9<사역>) 

시편 33은 ‘말씀’의 권위로 인한 창조를 강조한다(4,6,9절). 곧 창세기 1장을 연상시키는 어휘를 언급하며 세상의 기원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되었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창조의 시작인 셈이다. 

왼쪽 그림은 중세 네덜란드 화가 보스(Hieronimus Bosch: 1450-1516)의 「쾌락의 정원」(Garden of Earthly Delights) 표지다. 세 폭짜리 제단화의 날개를 접은 상태이다.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 세 번째 날 모습이다(창 1:9-13). 화가는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프톨레미우스(C.E. 83-168)의 우주관에 따라 공 모양의 거대한 천체를 두 폭짜리 화폭에 담았다. 가운데 평평한 지구가 중간에 있고 주변의 바다는 낭떠러지다. 중세의 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보스는 좌측 모서리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포착하여 그려 넣었다. 양쪽 상단에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지으셨는지 알려주는 시편 33절 9절을 라틴어로 새겼다. 곧 Ipse dixit et facta sunt, ipse mandāvit et creāta sunt; 그가 말씀하시니 이루어졌으며, 그가 명령하시니 견고히 섰도다. 이른 바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다’는 신학적 교리를 뒷받침하는 성서 구절을 그림으로 구현한 것이다.

한편 시편 33은 ‘말씀의 창조’에서 홍해 바다의 구원 사건으로 확장시킨다. 특히 7-8절의 찬양은 ‘바다의 노래’로 알려진 출애굽기 15장 내용과 흡사하다(출 15:1-18). 시 33편 7절의 ‘깊은 물’은 태초의 흑암의 ‘깊음’을 떠올리고(창 1:2), 또한 동시에 홍해 바다 사건의 바다 가운데 ‘깊은 물’과 연관된다(출 15:9). 두말할 것도 없이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신다’는 구절 역시 바다를 기적적으로 건너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로써 시인이 4-5절에서 야웨의 말씀으로 비롯된 정직과 진실, 공의와 정의, 그리고 사랑(דסח)을 노래하는 것은 말씀의 창조를 두 차례 강조하면서(6,9절), 역사적 구원(8절)과 하나님의 섭리를 알리려는 데 있다(10-12절).

시편 33의 중심은 야웨의 말씀이다(4-9절), 그분의 말씀으로 하늘을 지으셨고, 세상 만물이 비롯되었다. 야웨의 말씀이 정직하기 때문에 세상이 견고하게 설 수 있는 것이다(4,9절). 그러니 시인은 야웨의 진실한 말씀을 토대로 야웨의 계획(10-12절), 야웨의 돌보심(13-15절), 야웨의 권능(16-19절)으로 찬양을 확대할 수 있다. 시인은 자칫 딱딱한 ‘말씀의 창조’ 같은 신학적 교리, 곧 창조, 구원, 섭리, 등을 유려한 찬양으로 풀어내고 있다(1-3, 20-22절).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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