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염색하다

하고 싶은 일 수두룩하고
오라는 데 없어도 가고 싶은 곳이 여기저기
아직은 젊게 보이고 싶은데
제멋대로 삐죽삐죽한 새치
이 구석 저 구석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하얗게 바랜 세월의 흔적
자랑스러울 것 없고 내세울 것 없어
붓으로 조심스레 검게 지운다

옹이진 섭한 감정
검은 물감으로 지운다고 
저만치 달아난 젊음이 오기는 하련마는
마음마저 퇴색하고 싶지는 않은 걸

한 올 두 올,
세수하는 마음으로 
머리카락에 물감 들인다
마음 속 무지개도 함께 

- 《기독시문학》 2023년 상반기호에서

* 김순희 시인 : 이화여대 국문과 졸. 
시집: 『내 꿈은 숫자가 없다』 『함께 있고 싶은 사람』 『우리 마주보고 웃자』                      『햇살 좋은 날』 등. 영랑문학상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본의(원관념)를 염색(보조관념)에 숨겼다고 전제하면서 분석 내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 즉 염색은 수사법 측면에서 은유(숨긴 비유)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염색은 무얼 숨긴 말이고 머리카락은 어떤 상황을 지시하는 언어일까.

결론적으로 그 의미는 마지막 행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염색은 마음속에 있는 무지개를 만드는 미적 추구와 같다는 것이다. 1연에서 나오는 새치는 무얼 은유하고자 하는 걸까. 당연히 그 반대다. 원치 않는 일, 나이라는 세월의 흔적(2 연 첫 행)으로 자연현상이다. 동시에 숨기고 싶은 젊음에 대한 갈구다. /옹이진 섭한 감정/은 막연함이 아닌 간절함의 정서를 말하고 있다. 

머리염색을 통해 육체적 젊음으로 회귀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정신적 위로는 가능하다는 화자 심리를 알 수 있다. 

상상을 확장시켜 신앙적 은유로 대입한다면, 본질이 변하지 않는 죄성의 인간이 주님의 피로 회복되는(염색되는) 신앙고백을 숨기고 있다. 

이 작품의 특성 중 하나는 머리털은 두개골의 외적 사물이고, 머리 속은 뇌라는 내적 사물이다. 모발의 염색은 외부적이고 머리 속 무지개 염색은 내부적 즉 정신적인 염색을 함축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은유라는 수사법을 동원한 시 창작론의 미적 효능을 잘 보여준다. 또한 겉과 밖의 사물을 들어 양극화의 융합현상을 이루고 있는 점에 박수를 보낸다. 

시의 정의에 대해 표현을 달리 말하면 이 시처럼 능청을 떠는 언어 수작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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