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종 문 목사
원 종 문 목사

혼자의 힘으로 자립 한다는 것처럼 힘든 일은 없다. 특히 어려서부터 부모의 그늘 아래서 도움을 받고 성장한 현대인은 더욱 그렇다. 대학교육까지 부모의 도움으로 졸업하고, 결혼한 현대인들을 보면,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아빠찬스, 엄마찬스로 교육을 받은 인간들은 너와 그를 모른다. 자신만 출세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구축한다. 

이들에게는 ‘자립’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날 세상은 부모를 잘 만나야 출세하는 세상이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를 잘 만나야 세습도 할 수 있고, 큰 교회에 부임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큰 교회 목사의 자녀들은 목회자가 되려고 한간 힘을 쓴다. 반면 가난한 교회 목회자의 자녀는 자신이 목회자의 자녀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신앙과 믿음으로 교회의 직분을 결정하는 시대가 아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흑인 지도자 부커 T. 워싱턴(Booker T. Washington,1856~ 1915)은 1856년 흑인 노예로 태어나 남북 전쟁 이후 자유를 찾은 흑인노예의 세대였다. 하지만 당시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심각했다. 그는 “흑인들이 백인들로부터 진정한 해방을 이루려면,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실력양성론’을 내세운 지도자였다.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면서 청소년이 된 그는, 당시 흑인들의 전문적인 교육을 위해 설립된 ‘햄프턴 전문학교’를 찾아갔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미 정원이 초과했기 때문에 입학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부커 워싱턴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받아주기를 며칠간 간절히 애원했다. 그 모습을 본 학교 관계자들은 일단 그에게 청소를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허드렛일에도 최선을 다해 일하는 모습에 학교 담당자들이 감동하여 마침내 그에게 입학을 허가했다. 부커 워싱턴은 열심히 공부했고, 인권운동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렇게 자신의 실력을 차곡차곡 쌓은 이후 흑인의 경제 <자립>을 돕기 위해, 앨라배마에 '터스키기 기술학교’를 설립하고 진정으로 흑인해방을 이루도록 학생들을 가르쳤다. 교육과 실력이라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흑인의 <자립>을 이루려는 '부커 워싱턴'에게 많은 급진적인 흑인들은 나약한 방법이라고 비난했다. 부커 워싱턴은 백인과 흑인이 함께 살아가는 희망의 공동체를 만들어낸 큰 인물이 됐다. 

그럼에도 그는 그 길만이 흑인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자립>을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는 자는 마침내 성공한다고 믿었다. 영국의 변호사이며, 총리를 지낸 제프리 프라이Geoffrey Fry, 1888~ 1960)는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립>심이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 모두는 부모로부터 벗어나 넘어져서도 혼자 일어설 수 있는 자립심을 길러야 한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예장 통합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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