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헌 철 목사
서 헌 철 목사

지난 15일은 광복 78돌이었다. 또한 9월 1일은 ‘조선인’ 학살(虐殺)의 만행이 자행(恣行)된 ‘관동대지진’ 100년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반도는 남북분단으로 일제의 36년의 만행보다도 동족 간의 대치, 사상, 이념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니 참으로 비극이 아닌가? 이 비극의 모든 원인이 분명 일제의 침탈에 있음에도 매국노들과 현대의 종일주의(從日主義)자 들의 득세로 또다시 ‘을사늑약’에 의한 일제 36년의 참극이 되풀이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독립을 위해 가족, 재물, 목숨 등을 희생한 분들을 잊을 수가 없기에 국민의 답답함은 더해가리라.

1923년 9월 1일 ‘도쿄’ 등을 포함한 ‘간토’ 지방에서 발생한 대지진 당시 혼란의 와중에서 일본 민간인과 군경에 의하여 자행된 ‘조선인’ 대학살을 잊을 수 있겠는가? 

이때 살해당한 수는 약 6,000명 혹은 6,6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추가 자료가 발굴되면서 희생자가 약 2만 3,058명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일본으로 부터 한국에 들여왔다지만 그 금액은 8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것도 일본이 한국에 무상지급한 것은 고작 3억 달러이며, 2억 달러는 장기저리차관 곧 이자로 빌린 차용금이며, 그 일부가 포항제철 건설에 사용되었다고도 한다.(출처 : 위키백과)

그러나 1965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군은 월남에서 5,099명이 전사하고 11,591명이 부상했다. 이때 “국군(國軍)의 파병에 따른 외화수입 총액은 50억 달러 정도의 외화 수입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출처 : 조갑제 닷컴. 김필재 기자 2011. 8.14.) 이때 미국은 한국군의 파병에 대한 보상으로 한국 정부에 연간 약 1억 달러의 군사 원조를 제공을 하는 등으로 한국군 현대화를 이루었다(참고 : 위키백과)
곧 젊은 피로 ‘대한민국’ 경제 성장, 국군 현대화 등을 이루었다.

일본(일제)은 침략전쟁(진주만 기습)을 일으키고 패망했으나, 6.25 전쟁의 특수로 고도의 경제 성장을 했으며, 그 후에도 ‘대한민국’의 ‘무역역조’로 일본(일제) 경제는 크게 성장 하고, 세계 제2위의 군사력을 보유한 군사 대국이 되기도 했다.

작금에“‘미국’이 ‘동해’를 ‘일본해’라고 한다”는 보도 대로라면 ‘독도’ 등 한반도의 ‘부속 도서’는 모두 일본 땅이란 말인가? 심지어 일본(일제)의 일부 정치인들은 “전쟁을 해서라도 독도를 빼앗아 오자”고 한다는데, 저들의 망발에 소름이 돋는다.

그런 일본(일제)와 ‘대한민국’의 협력, 공조 등이 믿어지는가? 그들이 ‘대한제국’을 침탈할 때도 ‘조선(대한제국)’을 보호, 협력한다는 명분으로 ‘을사늑약’의 침탈이 있었으며, ‘가스라’와 ‘테프트’ 밀약 또한 일조하였다고도 한다.

 물론 일본 국민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일제 36년의 참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은 일본(일제)의 침략에 철저히 대비, 경계 또 경계하며 한순간도 방심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이제 우리와 우리 후세대가 대 학살(虐殺) 등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개연성에 불안,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지 않은가?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4:13-14)

한국장로교신학 연구원장•본지 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