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목사.
김 창 주 목사.

시편 12는 탄원시에 속한다. 탄식의 대상은 원수(2-4절)와 악인(8절)이다. 그들은 경건한 자를 괴롭히고 위협한다. 그들의 무기는 거짓말과 아첨과 두 말하는 이간질이다. 시인을 입술과 혀로 상처 입히고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다. 시편에 나오는 대표적인 원수에 속한다.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로 대변되는 원수들의 거짓말은 순결한 야웨의 말씀과 극명하게 대조된다(5-6절). 야웨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의 편이다. 원수들의 공격을 막고 위협에서 보호해줄 것이다. 시인에게는 경건한 자가 끊어지지 않도록 탄식을 멈추게 하고 안전하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개역개정>은 6절을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로 직유법으로 번역했지만 실은 은유법이다. “주님의 말씀은 순결한 말씀, 도가니에서 단련한 은이요, 일곱 번 걸러 낸 순은이다.”<새번역>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KJV> 야웨의 말씀이 순결하다는 고백은 구약과 시편에 몇 차례 나온다(시 18:30; 119:140; 잠 30:5). 그러나 말씀을 은(ףסכ)에 비견한 예는 많지 않다. 그것도 시인은 야웨의 말씀이 제련 과정을 일곱 번 거친 ‘은’이라고 표현한다. 이유가 궁금하다. 은은 금에 비하여 순도를 높이는 공정이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은이 화폐로 통용될 수 있었던 것도 까다로운 공정과정 때문이다. 따라서 경건한 이스라엘 신앙인은 화폐로서 가치나 수차례 정제 과정을 밟아야하는 은의 정결함을 야웨의 말씀에 견줄 수 있었던 것이다. 

1980년 예루살렘 남서쪽 케테프 힌놈에서 ‘은 두루마리’(silver amulet)가 발굴되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전 작품으로 알려진 이 발굴문은 ‘제사장의 축복기도’(민 6:24-26)로 판독되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복을 사모하는 경건한 신앙은 크기 11×39 mm, 순도 99%의 은종이 위에 못으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새긴 것이다. 한편 이 은 두루마리는 둘둘 말아 팔이나 몸에 달고 다니던 흔적이 남아있다.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잠 6:21. cf. 신 6:4-9)는 계명을 따른 것으로 경건한 신앙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장의 축복기도는 기독교인들의 주기도문(마 6:9-13 cf. 눅 11:2-4)처럼 친숙하고도 귀중한 말씀이었다. 지금은 <아버지학교>나 각종 모임에서 요절 말씀처럼 암송되고 있다. 

시인이 참소와 무고를 일삼는 원수들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근거는 야웨의 말씀이다. 5절과 6절에 ‘야웨의 말씀’ 두 번 나오지만 번역 상 같은 표현일 뿐 실상은 차이가 난다. 즉 5절은 “야웨가 … 라고 말씀하셨다”는 서술적 묘사이고, 6절은 “야웨의 말씀은 … 이다”라는 명사 문장이다. 앞의 줄임 부호는 실제 야웨가 하신 말씀을 직접 인용한 내용이 들어간다. 곧 “가련한 사람이 짓밟히고, 가난한 사람이 부르짖으니, 이제 내가 일어나서 그들이 갈망하는 구원을 베풀겠다.”<새번역> 하나님의 정체성과 구원 의지를 강력히 드러내는 선언이다. 이와 같은 강한 확신을 들으니 시인은 예의 경건한 신앙인답게 다음과 같이 화답하며 간구한다(6-7절).   

주의 말씀은 순결한 말씀, 흙 도가니에서 일곱 번 제련한 은입니다.
주여, 주께서 우리를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고 보살펴주십시오.<사역>

악한 말로 공격하는 원수들을 대응하는 방법은 불순물이 전혀 없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이다. 곧 ‘일곱 번’ 정제한 은처럼 깨끗한 말씀이다! 경건한 신앙인은 불순한 말의 힘에 휘둘리지 않는다. 순결한 야웨의 말씀은 언제나 참되고 영원히 믿을만하기 때문이다.   
한신대 구약학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