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나라는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왕족, 귀족, 기득권자 등 가진자들은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아야만, 유대나라가 잘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예언자 이사야가 나타났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앗시리아로 끌려가고 남은 사람, 즉 앗시리아가 보기에 보잘 것 없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을 통해 유대를 재건하겠다고 예언했다(이사야 43). 이들은 나약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앗시리아에 항거했다. 독립운동을 벌였다.

이는 구한말 수명을 다한 이씨조선과 일제 36년의 상황에서의 우리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양반과 정치인, 기득권자 등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일제에 쉽게 넘어갔다. 하지만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백성들은, 힘은 없지만 맨주먹으로 일제에 항거했다. 독립운동과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친일분자들의 적이었다. 이들이 바로 외국세력에 빌어 붙어살려고 하는 자, ‘우파에 의해서 좌파가 되었다.

오늘 대한민국은 로 갈려 적대적 관계가 치유할 수 없을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가다가는 남북한전쟁 이전에, 남한에서의 내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우파세력인 자유통일을 위한 교회 총연합회는 한국교회 전 현직 총회장 및 부총회장단 대회에서 남한 내에 50% 가까운 국민을 좌파, 간첩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남한에서 일어난 촛불집회를 비롯한 세월호사건,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북한정권의 지령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국민 편 가르기에 돌입했다. 노총을 비롯한 전교조의 활동도 북한의 지령을 받는 이적단체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들에 의해 남한에서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남한에서의 내전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그 중심에 화해자, 중재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한국교회와 정치인들이 있다는데 안타깝다. 여기에 국민 모두를 보듬으며, 국민화합을 말해야 하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오늘 대한민국을 보면, 침팬지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침팬지는 힘 있는 우두머리가 지배한다. 침범하면 죽여 버리는 세계가 침팬지의 세계이다. 인간은 자신을 성찰하고 회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오늘 대한민국을 보면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 모두가 서열의식이 강하다. 이를 순화시키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없다.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오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는 짓밟아 버린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전혀 지지를 않는다. 반대세력을 쳐 내야만 자신이 사는 세상이 되었다. 국민의 반을 적으로 몰아넣는 정치인은 사법부, 입법부의 결정을 따르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입맛에 맞는 법을 만든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자에게 알현한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힘 있는 자가 이뻐하기 때문에 슬픔당한자의 슬픔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고난을 당한 이 땅의 소녀들,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된 이 땅의 젊은이들은 육체는 짐승 같은 취급을 받았지만, 영혼만은 맑다. 오늘 대한민국의 이권집단, 카르텔은 누구인가(?) 이권집단들은 뱀의 유혹, 강대국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는 사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자처한다.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이 있는 역사의 현장에 계셨던 예수님은 인간들을 향해 빛과 소금으로 살라고 했다. 이를 마음에 두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쟁의 중심에 있던 바울은 화해자, 중재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런데 오늘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분쟁의 현장서, 화해자와 중재로자의 역할에 충실한 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분쟁의 중심서, 분쟁을 부채질 한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 모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소원을 우리에게 담아두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