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언제까지 침묵만 할 것인가

광복 78년이 지났지만 역사왜곡, 독도영유권 주장 등 일본의 한반도를 향한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이웃나라 국민과 자국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원전 핵 오염수를 버리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후쿠시마 원전 핵 오염수 방류를 묵인해 주는 회담은 아니었는지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정부는 핵 오염수가 과학적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이에 대한 홍보영상물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의 엄중한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24일 오염수 방류를 개시한다고 발표했다면서, “이는 공공연하게 핵 오염 위험을 전 세계에 전가하고, 사익을 전 인류의 장기적인 복지 위에 두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로 인해 가장 빠르게 피해를 입을 나라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들 사이에서 바다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를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이미 바다음식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바다 먹거리를 판매하는 어시장은 한산하다. 어민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이런 상황서 후쿠시마 원전 핵 오염수 방류를 비난하는 기사에 대해서 가짜뉴스라고 협박한다.

일본 핵 오염수가 자신들의 주장처럼 안전하다면, 바다에 버릴 이유가 전혀 없다. “자신들의 나라 일본의 농업용수로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응도 나온다. 분명한 것은 핵 오염수 방류는 인류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지켜야 할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 반발해야 할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우리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교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분명 쓰레기를 인류가 함께 공유하는 바다에 핵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신문> 2021411일자 다이키쇼키 일본은 어쩌다가 후진국이 되었나칼럼 내용처럼 일본은 후진국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보건적으로 깨끗하고, 하나님의 피조물인 생명의 존엄성을 그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는 나라를 일컬어 선진국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웃 나라와 상생하며, 국민 모두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나라, 양심과 정의가 살아 있는 나라, 국민의 아우성을 듣고 행동하는 나라를 선진국으로 평가한다. 헌데 일본은 여기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일본은 36년 동안 대한민국을 침탈했다. 2차 세계대전도 일으켰다. 2차 세계대전서 패배한 일본은 대한민국이 없었다면, 원시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나라이다.

일본은 일제36년과 한국전쟁을 통해 부강한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에 감사해야 할 나라이다. 이런 일본이 후쿠시마 핵 쓰레기를 버려, 또 다시 대한민국을 비롯한 태평양 연안국가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을 개의치 않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일본은 혼자만 살겠다고 하는 야비한 나라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일정 철회, 긴급 기자회견서 오염수 방류를 적극 반대하고 있는 모습.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일정 철회, 긴급 기자회견서 오염수 방류를 적극 반대하고 있는 모습.

일본 핵 오염수 방류, 인류를 공멸로 몰아넣는 결과 초래
양심
, 정의, 인권, 책임감이 실종된 나라 일본 선진국(?)

피해를 주는 일본, 우리의 이웃인가(?)

핵발전소 오염수를 바다에 버려 물을 오염시키는 일본,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이웃나라 영토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생떼를 쓰는 일본에게서 양심과 정의, 보편적 가치, 책임감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일본정부는 24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핵폐기물을 이웃국가인 우리나라를 비롯해 태평양 연안국가, 자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류 공동의 바다인 태평양으로 흘려보내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선교 초기 선교사들이 선진국이라고 극찬했던 일본이 하는 짓거리이다.

일본은 이웃나라의 영토를 자국의 영토라고 생떼를 쓰며, 이웃나라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왔다. 이웃나라의 소녀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동원하고, 소년들을 전쟁의 소모품으로 이용하고 군수공장과 탄광 등에 강제동원하고서도, 여기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다. 책임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일본을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가 없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로 아시아의 국가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전범국가이다. 여기에 대한 반성, 책임을 지지 않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다시 회귀하기 위해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다. 평화헌법을 폐기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본질이다. 대한민국에 대한 은혜를 잊는 일본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려야 할 처지에 놓였다. 성경은 우상 천황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의 진리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분명하게 교육하고 있다.

이를 망각한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며, 강대국의 잘못을 변명해 주기에 바쁘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친일적인 정치인, 경제인, 학자들이 이런 일본을 유토피아라고 생각한다는데 안타깝다. 이제 일본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오염시키고, 교란하는 국가가 됐다. 핵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는 일본은 후진국만도 못하다는 것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깨달아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일본은 인권이 실종된 나라임을 분명하게 알았다. 태평양전쟁 C급 전범 마지막 생존자인 김학래 옹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서,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교란하는 일본은 정의도, 양심도 실종됐다. 일본 아사이신문은 김학래 옹의 별세와 관련해서 조선인 태평양전쟁 전범 외면은 일본 국민의 책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김 옹은 포로 학대 혐의로 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후 감형돼 1956년 석방됐다. 석방 후 고향에 돌아가려고 했으나, 친일파라고 낙인이 찍혀 끝내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일본인 전범들이 다 받는 연금과 위자료를 받은 것도 아니다. 아사이신문은 일본에 양심을 묻고 또 물었다. 김 옹은 가고 싶은 고향에 가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친일파로 낙인찍힌 그를 고향이 받아 줄리가 없었다.

분명 일본은 양심도, 정의도, 인권도, 책임감도 실종된 나라이다. 더 이상 일본은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다. 유토피아도 아니다.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 위해 강한 나라 미국에 아부하는 일본은 나약한 후진국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초기 한국에 온 영미선교사들이 극찬한 것처럼 보건적으로 깨끗한 나라도 아니다. 핵 오염수를 바다로 흘러 보내 하나님의 질서를 교란하는 늑대의 탈을 쓴 양이다.

핵폐기물 하나님의 창조질서 교란

내가 내 양 떼를 찾아보고 살펴볼 것이다/목자가 그의 흩어진 양들 가운데 있을 때 그날에 그가 그의 양 떼를 찾아 나서듯이 내가 내 양을 찾아 나설 것이다/ 구름이 끼고 어두운 날에 그들이 뿔뿔이 흩어져 간 모든 곳에서 내가 그들을 구해 낼 것이다/내가 그들을 여러 민족으로부터 데려오고 그들을 여러 나라에서 모아들여서 그들의 땅에 데려올 것이다. 이스라엘의 산에서, 골짜기에서, 그 땅의 모든 주거지에서 내가 그들을 먹일 것이다./좋은 목초지에서 내가 그들을 먹일 것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은 그들의 우리가 될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좋은 우리에 드러누우며 이스라엘 산지의 풍성한 초지에서 먹게 될 것이다/내가 친히 내 양 떼를 먹이고 그들을 눕힐 것이다. 주 여호와의 말이다/나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고 추방된 사람을 데려오며 상처 입은 사람을 싸매 주고 약한 사람을 강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살찐 사람과 강한 사람은 내가 멸망시키고 정의로 그들을 먹일 것이다”(에스겔 3411-16)

오늘날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한마디로 간악한 나라이다. 핵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내 이웃 국가의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뻔뻔하기 그지없다. 핵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는 것은 자국의 어민은 물론, 대한민국의 어민, 태평양 연안국가의 어민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줄 것은 뻔하다. 하나님은 힘없는 양(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심판하시겠다고 성서를 통해 인간에게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는 행위

그럼에도 사악한 인간들은 탐욕에 길들여져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도성 밖, 영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때문에 예수님의 길을 가겠다고 고백한 그리스도인은 영문 밖으로 나가 고난당하는 이웃과 함께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해야 한다. 주님처럼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교란하는 악인들을 보면서도, 침묵하는 한국교회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 할 수 있겠는가.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는 동조이다. 이는 곧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면, 재앙을 불러온다는 사실들을 경험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앙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한 결과에서 발생한 결과가 아닌가.

역사를 왜곡하며, 과거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 반성 없이는 지도자는 목자가 될 수 없다. 성문 밖에서 고난당하는 이웃,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우, 일일노동자, 외국인노동자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이들과 함께 가야 하는 곳이다. 이들을 외면하고서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렇게 하나님나라는 준엄하다.

일본은 분명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려 생명의 물을 오염시키는 삐뚤어진 나쁜 나라, 이리의 DNA를 물려받은 잘못된 나라이다. 길을 잃고 잘못된 길로 가는 국가의 지도자를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 바로 목자의 길이다고 성서는 분명하게 교육하고 있다. 헌데 세계 최대강대국인 미국의 모습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일본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에 공동대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것이 강대국, 인류국가의 악이다. 목자(지도자)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가시밭길과 벼랑 끝을 헤맨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면,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이웃을 불러, 기쁨의 잔치, 생명의 잔치를 벌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참사랑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목자라고 했다. 이제라도 인간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전쟁과 기아에서 허덕이는 피조물을 나몰라 하는 인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교란하는 인간들을 향해 경고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키고, 보전하는 일이다. 또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야비한 근성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심각하다. 이웃나라가 잘되는 것을 절대로 보지 못한다. 일본 전 총리 아베는 이웃나라 한국에 대해서 경제 보복을 단행하면서, 미국 전 대통령 트럼프와 7차례 만났다. 일본과 한국을 중재해야 할 미국은 일방적이었다.

일본과 서방 더 이상 유토피아가 아니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일본 정치인들의 간교한 이간질에 넘어갔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미국을 침략한 일본 편을 들며, 곤궁한 가운데 있는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면서 일본과 한국을 똑같이 우방이라고 말한다. 이웃국가 백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본은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이웃나라라고 할 수 없다. “한국에 기술을 이전해줘 잘살게 해 주었다고 생떼를 부린다.

일본은 우리의 우방이 될 수 없다. 대한민국을 침략한 침략 국가이며, 대한민국을 침략해,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일제36년 동안 큰 고난을 당했다. 일본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심판을 받았다. 일본은 우리의 우방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누가 일본과 미국, 유럽을 유토피아라고 말했는가.

대한민국은 일본을 용서 할 수는 있어도, 잊을 없는 침략 국가이다. 일제 36년의 식민지 통치 아래서 이 땅의 국민들은 일제의 총칼 앞에서 맨주먹으로 비폭력 항거를 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맨주먹으로 독립운동과 민족운동, 항일투쟁을 벌였다. 비폭력평화운동을 벌인 것이다. 잔인한 일본의 경찰과 헌병의 무자비한 폭력에 이 땅의 힘없는 백성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서 또 쓰러지면서, 나라를 지켰다.

이를 몰각한 지성인과 정치인들이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에 대해 침묵하며, 행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보수적인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힘없는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의 국민을 내 마음에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런데도 일본은 오늘도 침략적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을 악용한다. 여기에 더해 일부 친일적인 인사들은 침략국가인 일본을 우방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6.25 한국전쟁에 참여해 피로 맺어진 혈맹이다. 6.25 한국 전쟁을 발판으로 부강한 나라가 된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회귀하기 위해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일본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로 결정했다. 지난 24일부터 방류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이에 대해 분노한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물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일본은 이 물을 마시며, 살면 될 것이 아닌가.

이 안전한 물을 바다에 버려 이웃나라에 피해 줄 이유가 무엇인가.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교란시키는데도, 일부 교회와 단체, 교단을 제외하고, 보수적인 교단과 단체, 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오히려 무엇이 문제인가(?)라며, 반박한다. 우리 어민과 일본 어민들은 분노하며,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는데도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유독 조용하다.

영미 교파주의를 그대로 받아드리고,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는 한국교회의 이 같은 모습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일본 천황을 섬기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한국교회의 이 같은 모습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어느 권사는, 국민들은 일본경제보복에 맞서 힘겹게 싸우는데, 일본 정부에 사죄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참담한 모습이며, 회개해야 할 일이다.

일본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핵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 내보내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침묵을 깨고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동성애 반대 운동 등을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반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운동을 벌이면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교란시키고, 이웃나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내는데도, 한국교회가 침묵한다면, 목자 잃은 교회이다. 이런 교회의 목사는 참 목회자가 아니다. 1달란트를 받은 종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행동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불성실한 종이다.

후쿠시마 핵 쓰레기방류는 신에 대한 도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쓰레기방류는 신에 대한 도전인 것은 분명하다. 인간사회의 혼란과 고통은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다가 줄 것이다. 신종바이러스감염증 보다도, 더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위력을 보았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쓰레기가 인류 모두가 공유하는 바다로 흘러들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 재앙은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비교도 안 될 재앙이 될 것이다.

어느 목사가 3.1절 집회에서 말했듯이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2방을 맞고 연합군에 항복했다. 이웃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대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일본 어민과 이웃국가 대한민국 어민들의 항의는 거세지고 있다. 이제 바다의 목고리를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 했다.

그래서 <니혼게이자신문> 다이키쇼키 칼럼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을 후진국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은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쫓는 이노베이션(혁신)에만 치중,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본원적 인벤션에 소홀이 하고 있다.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잃어버린 일본은 더 이상 우리의 이웃이라고 말 할 수 없다. 후진국으로 빠르게 가고 있는 일본을 누가 보건적으로 깨끗한 나라라고 했는가.

그들이 바로 망해가는 이씨 조선 말, 한국에 들어온 영미선교사들이었다는 사실. 이들 선교사는 일본은 보건적으로 깨끗하고, 조선인은 일본을 배우고, 일본의 지배아래 있는 것이 유익하다”(아서 브라운 목사저 <극동의 지배>고 했다. 반면 조선인에 대해서는 개같이 사납고, 돼지처럼 더럽다고 평가했다. 그로부터 130년이 지난 오늘, 일본은 핵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는 후진국이 됐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 해 주었던 감리교 감독 웰치 등은 일본정부로부터 최고의 훈장을 받았다. 또한 많은 선교사들이 총독부의 인솔아래 일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국의 개신교 지도자들은 이들의 공을 내세워 비판 없이 무조건 받아드려, 속없는 그리스도인을 양산해 왔고, 양산하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대부분의 한국선교사들은 일본 식민지 통치 아래서 신음하는 피압박민족의 고난과 아픔을 몰각했다.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과 행동은 탐욕 그 자체였다. 자국의 이익에 몰두하며, 한민족에게 지배자의 신학, 근본주의 신학, 신민지 신학을 이 땅에 그대로 이식시켰다. 그렇다보니 하나님은 직접 생명의 혁명을 단행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 인간은 자유를 향한 혁명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하지만 생명을 위한 현명은 한 번도 일으키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창조세계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위한 혁명을 일으키셨다.

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아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더 역겨워 인간들에게 마스크를 쓰게 했다. 앞으로 입마개를 하고 죄를 짓지 말고 살라는 것이다. 또 손으로 범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손을 씻게 했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면 다투고, 분열하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살라고 한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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