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화 되어가는 교회

이웃교회와 이웃교단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교회 장로교 가을총회를 앞두고, 이단 및 사이비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기를 오늘 한국교회는 이단의 문제보다도 사이비 교주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실 오늘 한국교회 교인 대부분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목회자 한사람을 위해서 교회에 다닌다는 얘기다. 교회의 목회자가 교주화 되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회 내규도 목회자 한사람을 위해서 마음대로 뜯어고친다. 이제 교회는 교주화된 목회자 한사람만 보인다. 그러면서 이웃교회, 이웃교단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경계한다. 한마디로 일부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신앙공동체에서 크게 이탈해, 목회자 한사람을 찬양하는 이상한 단체로 변질됐다. 이렇게 가다가는 교단간의 갈등, 교회간의 갈등, 교회내부의 갈등 등 기독교 내부의 다툼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교회는 교단 간, 단체 간, 교회 간, 교회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재정적인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교인들이 하나님나라운동을 위해서 드린 헌금이 소송비용으로 새어 나가고 있다. 한때 일부 교회의 목회자들은 교회 내부에서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면, “이단의 신도들이 침투해 분쟁을 일으켰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한국교회가 이웃교단과 이웃교회의 신앙과 신학사상을 존중하지 않으면, 기독교내부의 갈등은 끝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분명한 것은 이단이나, 정통교단이나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고, 같은 성경을 보고, 같은 찬송가를 부르며, 같은 신앙고백을 하면, 분열되고 갈등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교주화된 목회자, 정치꾼들에 의해 분열되었고, 일부 목사는 이단으로 정죄 받았다.

오늘 한국교회의 이단문제는 교단과 교회를 보호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화해자,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언론 당사자들도, 이해관계에 얽혀 다툼을 조장하고, 언론사 간 불꽃 티는 공방을 벌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언론은 이단을 운운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자격이 전혀 없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이단은 주요교단 이단연구가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이단의 문제가 아니다. 신을 돈으로 대치시키고, 예수님을 팔아 장사하는 사이비 교주들이 더 큰 문제이다. 신보다 맘몬을 좋아하는 한국교회는 이제 이단을 논할 자격조차 상실했다. 성경은 탐욕과 맘몬이 모든 악의 근원이 된다고 했다. 돈에 눈이 어두운 사이비들에 의해 오늘 교회의 질서, 교회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이는 곧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이비화 되어가는 교회, 교주만 보인다
이웃과 등진 교회, 목회자 신뢰도 추락

맘몬과 탐욕은 모든 악의 근원

이제 한국교회는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 목회자의 임지도 돈으로 사고판다. 이런 과정서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돈으로 계산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 한국교회의 현주소이다. 이는 분명 한국교회가 신구약성서에서 이탈해, 사이비종교로 변질됐고,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 이의가 없다. 이단은 이웃교단, 이웃교회의 신앙과 신학사상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가 빚어냈다.

한국교회가 규정한 이단 중에는 신구약성서에서 이탈한 몇몇 단체를 빼고 대부분의 단체는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오늘 일반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책, 찬송가도 함께 부르며, 같은 신앙고백을 한다. 그리고 하나님나라를 똑같이 갈망한다. 이단 교인들은 신앙과 신념이 개신교 어느 교회의 교인보다도 강하다. 이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사랑도, 용서도 있다. 하지만 개신교 교회와 교인들에게서는 이런 것이 보이지를 않는다.

사랑과 용서를 잃어버린 오늘날 교회는 분열과 갈등이 만연하고 있다.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인다. 교회의 재정은 소송비용으로 날려 버린다. 여기에는 하나님도 없다. 부모형제도 없다. 그래서 종교적인 다툼이 무섭다는 것이다. 문제는 돈이 있고, 힘이 있는 목회자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일은 없다. 힘없고, 돈 없는 목회자, 여자 목회자를 이단의 올무에 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부·성자·성령을 구별하지 못하고, 구분하는 A교단의 P목사는 자신이 삼신론자라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는 여성목회자, 지나치게 성령을 강조하는 목회자를, 자신의 신앙과 신학이 다르다는 이유를 내세워 이단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에게는 해마다 장로교 총회를 앞두고, “여성목회자 한명을 잡는다는 별명까지 붙었다. 이는 분명 신앙과 신학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결과이다.

그래서 일부 목회자는 오늘 한국 개신교회는 이단의 문제가 아니라, ‘의 자리를 으로 대치시킨 사이비 교인과 목사가 문제이다고 지적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개신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교만의 극치를 보이지만, 이단공작소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단은 오히려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교회가 정죄한 이단도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며,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 실현을 대망한다는 것이다.

신앙과 신학의 다양성을 인정하라

오늘날 사이비로 변질되어 가는 한국교회, 탐욕에 길들여진 목회자를 어떻게 정화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크다. 종교개혁 이후 교단 간, 교파 간에 이단문제가 크게 일어났다. 그러자 허버트와 같은 이신론자들이 나타나 모두 하나님을 경배하는 만큼, 원종교의 뿌리를 찾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결국 밑에서부터 원종교를 찾아 따라가다가 보면, 한분의 신, 하나님에게 도달한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유일신, 살아계신 한분의 신, 하나님을 믿는다.

홉즈를 비롯한 존 로크, 아담스미스 등도 이신론자였다. 이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유일신,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통해 각기 다른 종파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유일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다. 인간의 도덕성은 종교에 의해서 완성된다. 그것은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사회 전체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오늘 교회 안에서 이 같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안타깝다.

모두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산물인 물질()과 탐욕만을 추구한다. 제의적인 물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혼자 살겠다며, 물질(맘몬)을 숭상하며, 신을 팔아 장사하는 장사꾼이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웃나라, 이웃종교, 이웃교회, 이웃교단을 정복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종교 간의 갈등과 분열을 일으켰다. 신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맘몬과 바벨만 보인다. 예수님이 싫어하셨던 맘몬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신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킨 한국교회는 썩은 악취만 진동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전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종로5가를 걸어 다니는 정치꾼 목사와 장로를 향해 걸어 다니는 시체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성지로 불리던 종로5가가 정치꾼 목사와 장로들에 의해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파괴되고 있다. 이는 곧 교회 생태계의 위기이며, 개신교의 위기가 됐다.

평생 이단연구에 몰두한 최삼경 목사는 진용식 목사의 출판기념회에서, 사이비·교주화 되어가는 한국교회를 한마디로 진단했다.

오늘 한국교회는 13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은 그 어디로 갔는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목회자의 교주적인 아집의 죄는 교회와 민족의 죄가 됐다. 신학교, 연합기관, 담임목사의 세습을 꿰뚫어보면, 비도덕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세월이 흐르면서 성숙해져야 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야 할 목사는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목사의 말대로 오늘 한국교회는 사이비·교주화 되어가고 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교회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교회마다 돈 냄새만 풍긴다. 사이비 목사와 교인들의 입에서는 돈을 외치는 소리만 들린다. 이제 교인들이 드린 헌금은 악마의 금전이 됐다. 예수님은 돈(맘몬)을 철저하게 거부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사탄이 나타나 시험했다.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단호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거부하셨다.

헌데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목회자와 교인들은 예수님보다 맘몬을 사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거부한다. 이제 예수님은 타락한 목회자에 의해 복방망이가 되었다. 이들은 이웃교회, 이웃종교, 이웃교회를 비난하여,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이단 및 사이비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에 자신들만 가는 것처럼 호도한다.

과연 목회자와 교인들 중 부귀영화를 거부하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길, 십자가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참사랑(복음=기쁜소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버려도, 부귀영화는 버릴 수 없는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길들여진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사이비 목회자 양에 대하여 늑대(?)

그래서 일각에서는 목회자가 무섭다고 말한다. 목회자에 의해서 촉발된 교회분쟁을 보면, 그것은 극명해진다. 교회분쟁 대부분은 목회자 자신은 물론이고, 교인들에게 상처만을 주고 끝난다. 문제는 상처받은 교인이 교회를 떠난 이후, 이웃교회로 교적을 절대로 옮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가나안 교인으로 남거나.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한다. 상당수의 교인은 타종교로 이적한다.

이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결과이다. 사실 오늘 대부분의 교회는 곤궁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하지 못했다. 그 결과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고, 코로나19 이후 교인 50%이상 줄어들었다. 이웃과 교인들의 삶에서 이탈한 교회는 한마디로 희망 없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 대부분의 교회는 현재에 안주하기에 바쁘다. 그러면서 일부 목사는 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탐욕에 길들여진 목회자는 돈의 흐름에 대한 감지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교인들이 상처를 받기 전에 떠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목회자는 교인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부 목회자는 교회내규를 자신 중심으로 바꾸어버리는 일이 한국교회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교회는 분명 교인들의 현금에 의해서 형성된 공동재산이며, 하나님의 것이다. 헌데 교인도 모르게 교회재산을 목회자의 소유로 슬쩍 바꿔 교인과 목회자간에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곧 교회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교회의 재정은 소송비용으로 탕진하고, 교인 대부분이 떠난 다음 해결된다. 강남의 한 대형교회 목사는 교회를 은퇴하면서, 퇴직금을 안 받겠다고 한국교회와 교회 앞에 공표했다. 그러나 맘몬과 탐욕에 길들여진 이 목사 역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교회에서 챙길 것은 다 챙기고 교회를 떠났다.

이렇게 일부 목사는 양의 탈을 쓰고, 교인들에게 상처만을 안겨주고 있다. 이런 사이 교인들 간의 상처의 골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패였다. 오히려 이를 해결해야 할 지방회 및 노회, 총회가 교회분쟁을 부추긴다는 말도 나온다. 한마디로 이 교회는 지방회 및 노회, 총회의 정치꾼 사이비 목사들에 의해서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이들이 바로 사이비 목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이비 목사들은 교인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을 챙기기에 바쁘다.

한국교회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가시밭길과 벼랑 끝을 헤매는 예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렸다. 성서의 교훈에서 이탈했다. 모두 타락한 중세교회를 닮아가고 있다.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가운데 일부 목회자는 자신의 티를 감추기 위해서 돼지 목 따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가식적인 거룩함을 보인다. 사이비 정치꾼 목사에게서 선한 것을 기대 할 수 없다.

이들에 의해서 기독교의 가치인 진리와 정의가 실종되고 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계시종교의 가치들이 사이비 목회자 의해 가려지고 있다. 세상을 걱정하며, 세상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인 한국교회는 선교 130년만에 세상 사람들이 걱정하는 세태가 됐다. 하비콕스는 교회가 세상을 버리면, 하나님은 교회를 버린다고 했다. 마이너스 성장에, 신뢰도를 잃어버린 한국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하는 목회자와 교인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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