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교회 건물 옥상에 매단 십자가는 어두운 사회를 비추는 빛인가 아니면 세상의 고질적인 악행을 녹여 정화 시키는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주일과 모일 때마다 교회를 이룬 지도자들은 신자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줄 것을 역설하고, 신자들은 될 수 있으면 사회에 나가서 신자들이 해야 하는 소명을 충실하게 실천하려고 노력하기를 권고한다. 어려운 문제는 말로 가르치기는 쉽고 내 귀를 가지고 듣기는 쉬워도 실체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가 무척 어려운 것이 신앙생활이다. 교회에 모여드는 신자들의 수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줄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한국교회가 세상을 향해 해야 할 일은 그대로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양과 질적으로 신령한 소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왠지 선교초기 보다는 지도자나 신자들의 신앙의 순수성이 모자라지 않은지도 궁금하다.  

사실 바라기는 예수님 때에 세워진 초대교회의 모습하고는 오늘의 교회가 이름과 모양을 별반 다르지 않다고는 하지만, 현대교회를 이룬 지도자나 신자들의 순도는 아마도 초기 교회와는 다른 점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먼저 초기 교회가 세워질 때 사도들의 행적을 보더라도 오늘과 비교가 불가하다. 지도자들에게는 복음에 대한 열정과 순교 정신이 투철하였으며, 복음을 선교하다가 오는 고난과 역경은 피할 수 있어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몸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게 한다. 복음 전도와 신자들을 가르치기 위한 모범적인 행동은 바로 순교의 정신을 통해 순수하게 우러나온 열정이었다. 교회가 세상에 존재해야 이유가 교회의 본래 모습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진솔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지도자들의 희생과 순교 정신을 보고 성장한 초기 교회를 이룬 신자들의 신앙 태도는 사도들과 제자들의 신앙 못지않았다. 그 결과 자신이 소유한 물질을 과감하게 사도들의 발 앞에 스스로 헌납 하는 일에 주저 함이 없었다. 이러한 초대 교회는 모인 물질을 기반으로 시대적으로 량산된 과부와 고아들을 구제하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교회는 어렵고 가난하고 보호자가 없는 자들에게 영적으로 육적으로 기댈만한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교회의 각자도생하려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초대 교회의 모습에서 배울 수 있다. 

현대교회가 아무리 유명세 있는 교단의 간판을 내걸거나 초특급으로 성장한 중대형 교회를 내세워 부흥을 유도 하지만 이는 교세를 확장하려는데 그치고 실제 영혼 구원과 생명 사랑에는 미달 되는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지도 궁금하다. 현대교회는 교세가 크거나 작은 것은 지도자들의 역량과 신자들의 열성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그런데 그러한 세속적인 편차가 혹시 작은 교회를 무시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고 본래부터 그렇다고 무시하거나 치부해 버리지 않는지도 의문이다. 

기독교계에 바라는 이루기 힘든 사안 중 전 세계에 산재한 교회를 지도하는 지도자들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마음을 가졌다면 먼저 교회의 교세가 크고 작은 모습이 사라지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초대교회는 서로 유무상통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유족한 교회는 형편이 어려운 교회를 돌보는 기록은 현대교회들이 각자 속한 교단 내에서만 움직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교회와 교회 간의 거리가 지방과 도시에 있다고 하여도 오히려 지방에서 도시에 있는 교회의 형편을 살피기도 했다. 

현대교회는 교파와 교단 위주로 결성되었기 때문에 타 교단의 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것을 목격하여도 남의 일로 치부하여 외면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진정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세워진 교회라고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 기간 중 보여 주었던 모습을 재현함이 마땅하다. 당시의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센파, 헤롯당 중에 바리새파에 속한 인력이 다수를 차지했다. 예수님은 이들을 가리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한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무늬만 종교인이며 속은 비종교인보다 거짓 됨을 지적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교회의 교파주의도 다시 한번 생각해봄이 어떨지? 그 외는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어디에 있으나 모두 한 형제요 자매이며 하나의 교회임을 기록했다. 

교회가 진정 빛과 소금이라고 한다면 교회가 사회 속에서 태우고 녹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빛은 제 몸을 태워야 빛을 발하고, 소금은 제 몸을 녹여야 그 맛이 드러난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진정 세상을 향해 제 몸을 태우거나 녹이기는커녕 종교재벌 세력으로 자리 잡아 오히려 군림하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초특급 건축물로 군림하고, 몰려드는 군중을 앞세워 종교 세력으로 군림하는 모습이다. 진정 기독교회가 세상 속에서 녹는 소금이며 제 몸을 태우는 빛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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