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민 교수
이 민 교수

미국의 복음주의 작가인 필립 얀시(Philip Yancey, 1949~)가 최신작을 펴냈다. 바로 《용서: 은혜를 시험하는 자리》(원제 The Scandal of Forgiveness, 역자 윤종석, IVP, 2023)이다. 저자는 여러 사례를 들어가며 “복수할 권리를 내려놓고 자신을 가해자에게 묶어 두는 울분의 사슬을 끊는 해방”을 강조한다. 특히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지 상관없이 용서의 실행을 역설한다, 용서하지 않으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용서만이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준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50)의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에서 장 발장(Jean Valjean)은 빵 하나를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그 어떤 징벌도 자신을 바꿀 수 없었지만 자신의 허물을 덮는 용서를 체험한 후에 영혼과 속사람이 변화하게 되었다. 용서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일곱 가지 말씀 중 첫 번째가 바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한 용서의 기도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용서는 사랑의 출발점이며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용서 없는 사랑은 무의미하며 사랑 없는 용서는 맹목적이며 율법주의다. 최고의 사랑은 용서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서 용서의 정의는 이렇다.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감정이나 태도 변화를 의도적·자발적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복수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버리고 가해자가 잘되길 바라는 능력이 커지는 것”이다. 

지금도 매주일 강단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한국교회의 거목인 곽선희 목사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공산당을 용서한 힘으로 북한선교의 선구자가 되었다. 한국전쟁 직후 청년 곽선희는 광산에 끌려가 고생하다가 도망쳐 산에 몇 달 동안 숨어 지낸 적이 있었다. 그가 풀밭이나 굴에서 자면서 지낼 때 아버지가 식량을 보급해주셨다. 아버지는 들키면 바로 총살당하는데도 나뭇짐 안에다가 미숫가루, 때로는 삶은 닭을 넣어서 깊은 산까지 몇 십리 길을 올라오셨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몸조심해라!”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내려가시곤 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제 다시 산을 내려가면 정말 효도하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어느 날 아버지가 총살당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아직도 식지 아니한 아버지의 시신을 잡고 있을 때 “이놈아 살아야 효자다. 너 여기서 죽으면 불효자야. 살아야 효자다.”라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간신히 탈출을 했다. 

곽선희 목사가 직접 겪은 이 엄청난 사건은 훗날 북한선교의 돌파구가 되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소 500마리를 북한에 보낸 것을 시초로 수십 차례 방북하여 의료기구, 의약품, 쌀, 옥수수 등을 원조하고, 북한 나진에 고아원을 세우며, 평양에 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하였다. 곽 목사는 ‘상처받은 치료자’(wounded healer)로 한평생 북한을 도우며 예수님의 ‘용서의 신학’을 실천하고 있다. 

곽선희 목사가 북한을 방문할 때면 으레 담당 간부가 하는 말이 있다. “목사 동무, 우리는 목사님이 어렸을 때 목사님의 아버지가 목전에서 우리 공산당에게 총살당하셨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위하여 이렇게 많이 힘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은 용서하고 나서야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게 된다.  

어떤 어린 남매가 놀다가 다투었다. 엄마가 이 모습을 보고 뛰어왔을 때 누이동생이 씩씩거리며 “오빠가 먼저 싸움을 걸었어요.”라고 말했다. 오빠도 지지 않고 “아니에요. 쟤가 먼저 시작했어요.” 엄마는 남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누가 먼저 싸움을 시작했는지 알고 싶지 않단다. 엄마는 누가 먼저 싸움을 그치려 하는지 알고 싶단다.”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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