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성서에는 이따금 일정한 크기의 활자 사이로 작게 인쇄된 글자가 눈에 띤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시 19:4); “번개를 번쩍이사 원수들을 흩으시며”(시 144:6). 히브리어 본문에 없지만 번역 과정에서 맥락을 살려 덧붙인 것이다. 주어나 목적어가 생략되어도 전후 문맥을 따라 헤아릴 수 있듯 히브리어 구문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히브리어 문장에는 간혹 동사 없는 명사문도 통용된다(창 45:3). 시편 84에 유사한 예가 두 곳에서 확인된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와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의 두 구절에서 ‘시온’과 ‘다른 곳에서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시인의 간절한 기도는 ‘주의 장막’(1절)과 ‘야웨의 궁정’(2절), ‘주의 제단’(3절), ‘주의 집’(4절), ‘주의 궁정’(10절), ‘하나님의 성전’(10절) 등으로 하나님의 처소를 다양하게 표현한다. 시온은 그 모든 개념과 의미를 아우를 수 있는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이며 언어다. 실제로 시인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라’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7절). 그러니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는 구문에다 원문에 없는 ‘시온의’를 넣은 것이다. <개역개정>의 “마음에 시온의 대로”는 글자 그대로 옮기면 ‘너희 마음의 큰 길’(highway in your hearts)이다. 이 구절은 각 번역마다 해석을 은근히 곁들어 놓았다. “마음에 이미 시온의 순례길”<새번역>은 지나치고, “순례길”<공동>, “순례의 길”<새한글, 성경>, “the highways to Zion”<NRSV> 등은 7절의 시온과 예루살렘 순례를 암시하는 시편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수용할 수 있다.

구약성서에 쓰인 ‘길’의 종류의 의미를 찾아보자. 이와 관련된 어휘는 크게 넷이다. ① 데레크(ךרד)는 일반적인 의미이며 주의 길(대하 6:31; 시 5:8; 25:4; 119:15; 37), 도덕적인 길(신 2:27; 시 18:30; 25:4; 85:13; 욥 34:21; 잠 2:8; 3:6), 또는 여행길(창 24:21; 민 24:25; 신 8:2; 삼상 1:18)까지 광범위하게 쓰인다. ② 나티브(ביתנ)는 보통 지름길이나 바닷길을 가리키며(시 78:50; 사 43:16) 또한 데레크와 의미상이 차이 없이 동의어로 활용된다(시119:105; 욥 18:10; 잠 12:28). 지혜의 길(잠 3:17), 정의의 길(잠 8:20), 계명의 길(시 119:35), 더러 ‘굽은 길’(사 59:8)을 뜻할 때도 쓰인다. ③ 오라흐(חרא)는 문자적으로 단순히 길(삿 5:6; 사 33:8; 43:3), 상징적으로 인생 길과 옳은 길을 나타낸다(잠 1:15; 시 139:3; 142:3; 사 40:14). ④ 메실라(הלסמ)는 위의 세 단어보다 한정적이고 활용도가 명확하다. 대부분 ‘큰 길,’ 또는 ‘대로’ 등으로 번역되듯 이른 바 고속도로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길과 달리 인위적으로 설계하며 닦은 계획도로다(민 20:19; 21:17; 왕하 18:17; 사 11:16; 33:8; 40:3). 국가의 주요 행사가 진행되는 공식적인 큰 길이다(삼하 20:12; 렘 31:21). 흥미롭게도 ‘별들이 다니는 길’(삿 5:20)에도 메실라를 활용한다. 따라서 메실라는 정직한 사람이 당당하게 활보할 수 있는 도로다(잠 16:17).

이제 시편 84의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시인은 ‘주의 장막’을 그리워하면서 언제나 참새나 제비처럼 ‘내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염원한다. 그러니 시온에 올라가는 상상과 함께 경건한 마음 자세를 가다듬는다. 시인은 성전에 오르는 자신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려본다. 루터는 ‘마음에서 우러나 주를 따르는 자’라고 해설한다. 과연 그렇다. 그가 ‘눈물 골짜기’를 지나면서도(6절) 새 힘을 얻는다. ‘눈물 골짜기’는 지리적 환경 묘사지만 영적 변화를 암시한다(스 10:1). 골짜기가 산으로 바뀌는 것은 자연의 변화이고, 눈물에서 샘으로는 영적인 변화를 암시한다. 시인이 주의 장막을 사모하며 시온산을 오르는 것은 영적 순례의 목적지 곧 영적인 성숙을 의미한다. 

순례자의 하나님과 시온을 향한 사랑과 신뢰는 ‘다른 것’보다 천 배는 더 강렬한 것이다(10절). 그러므로 그는 “힘을 얻고 더 얻어” 시온으로 갈 수 있다(7절). 한글은 대부분 “힘을 얻고 더 얻어”로, “오르고 또 올라”<공동번역>로, 흠정역은 from strength to strength으로 옮겼다(NRSV). 시온에 올라 하나님을 뵈올 일 앞에 두려움과 피곤이 자리할 공간은 없다. 새 힘으로 ‘배가된’ 순례자는 야웨의 장막과 궁정을 보며 시온의 대로를 지나 시온산을 오른다. 마침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더 행복하고 기쁜 날을 맞이한다. 그의 노래와 찬양은 중단 없이 계속된다. 

시편 84는 아슈레이(ירשׁא)가 시편 전체 25 회 중 세 겹으로 중첩되어 주목을 끈다. 시편 84는 ‘시편의 진주’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품고 주의 집을 사모하는 이에게 ‘힘 위에 힘’이 더 생겨 하나님의 전에 나갈 수 있고 날마다 주를 송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며, 주의 집에 살면서 맛본 하늘의 복과 기쁨은 진주알처럼 영롱하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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