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환 목사
김 명 환 목사

골로새서 3장13절에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 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일곱번씩 일흔번을 용서하라고 했다. 유대교 랍비이며, 신비주의자이자, 탈무드학자이며, 법전편찬자인 엘레아자르 벤 유다(Eleazar ben Judah, 1160~1238)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용서>하는 것이다"고 했다. 

분명 용서는 아름다운 일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을 36년 동안 침탈한 일본에 대해서 용서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대한민국에 용서를 빌어야 용서해 줄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일본의 대한민국 침탈에 대해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 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용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 때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일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독도 영유권 주장을 비롯한 역사왜곡 등 생떼를 끈다. 그리고 일본 자민당은 국민적 지지가 내려앉을 때마다 대한민국을 악용해 왔다. 이런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친일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는 정치인과 학자들을 보면, 안타깝다 못해 참담하다. 이들이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정치인인지, 학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아베의 경제보복 아래서 대한민국 국민은 곤궁하지만, 정부를 믿고 경제보복에 맞섰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정치인과 기득권자 대부분은 일본에 굴복했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백성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항일무재투쟁을 비롯한 독립운동을 벌였다. 이들의 독립운동의 가치는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 오히려 이들을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오늘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는 정치인과 학자들에게 묻고 싶다.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을 보면, 일본을 용서할 수도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일본은 대한민국 침탈 36년과 6.25한국전쟁을 통해 원시국가에서 부자가 된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일본은 제2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이다. 그 결과 일본은 원시국가와 다름이 없었다. 이런 국가를 누가 선진국이라고 말을 했는가. 그들이 바로 초기 한국선교사들이 아닌가. 

오늘 한국교회가 선교사들의 원리주의와 근본주의, 정통주의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여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후쿠시마 원 오염수 방류 등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침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중년 남성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정리해야 할 일들을 적다가 아직 마무리 되지 못한 감정들이 생각났다. 그 감정 중 하나는 바로 <용서>였고, 지난날에 자신이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제는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용서해야 할 사람들에게 전화로 안부를 묻고. 과거의 과오를 <용서>한다는 말을 전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들도 이젠 마음의 짐을 내려놓길 바라며 축복을 빌었다.

그렇게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일들과 쌓인 화를 하나씩 풀고 나니 지금껏 누리지 못했던 평안함이 찾아왔다. 병이 치료되는 기적은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점점 나빠지는 병세에 고통이 심해졌음에도 그는 평온함을 유지했다. 편안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렇다 용서는 사랑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용서하지를 못하면, 무거운 짐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 한마디로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지만,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용서해야 마음이 편안함에도 인간 모두는 용서하는 것에 주저한다. 인색하다. <용서>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의 상처는 결코 나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소망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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