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민 교수
이 민 교수

그리운 바다 성산포라는 시로 유명한 이생진(1929~) 시인의 숲속의 사랑 16이 있다.

거센 바람이 시기를 한다
사랑은 언제나 약한 풀꽃
그러나 바람은 사흘을 못가니
참아라, 그러면 네가 이기리라.

사람은 죽을 때 세 가지를 후회한다. 첫째, ‘좀 더 베풀 걸!’, 둘째, ‘좀 더 즐길 걸!’, 셋째, ‘좀 더 참을 걸!’ 등이다. 특히, ‘좀 더 참을 걸!’은 대부분 인간의 고뇌이다. 바람(고난)은 풀꽃(사랑)을 언제나 이기지 못한다. 사흘을 못 버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궁극적 해답은 참는 것이다. ‘참는다는 것은 불어의 똘레랑스’(tolerance)와 통한다. 이는 관용·아량·인내의 의미인데 어원상 동의하지 않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며 참는 것을 뜻한다. 한 마디로 인내’(perseverance)를 강조한다.

누가복음 2119절에서는 말씀한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여기에서 인내휘포모네’(ὑπομονή, Hypomone, Patience)이다. 이는 악에 대항하는 능동적 인내를 뜻한다. 어원상 휘포’(Hypo)아래에’(Under), ‘모네’(Mone)머무는 곳, ’(Home)을 의미한다. 영어 속담 ‘There is no place like home.’(집보다 좋은 곳은 없다)과 일맥상통한다.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본향인 집 즉, 천국(home)에 거할 것을 바라보며 이 세상의 어려움을 참고 인내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인내해야만 전쟁과 재난, 기근, 환난, 핍박 등을 통해 복음이 전파(마태복음 24:13~14)되어 하나님의 선교적 역사는 완성되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을 알고 가는 길에서는 지치지 않는다. ‘결과를 예측하며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이미 스코어를 알고 시청하는 스포츠 경기의 재방송과 같다. 응원하는 팀이 이길지 질지 알지 못해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시청하는 생방송과는 차원이 다르다. 결과를 알고 있기에 느긋하다.

구약의 욥은 재산과 자식, 그리고 건강까지 잃어버리는 고난을 당한다. 급기야는 아내와 가장 믿어줄 사람마저 배신한다. 그러나,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다라며 찬송한다. 욥은 고난의 궁극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욥기의 주제는 욥의 인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핵심은 욥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도 초점은 돌아온 탕자가 아니라 유산까지 탕자에게 주어 보내며 매일 밖에서 고통 속에서 기다리며 용서한 아버지. 기다림이 없는 사랑은 없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25년을 기다려서 100세에 이삭을 얻는다. 모세와 여호수아도 지난한 광야에서 기다리다가 80세에 부름을 받는다. 기독교 믿음은 독감을 치료하는 주사 한 방이 아니다. 한 번의 주문으로 소원을 성취하는 요술램프가 아니다. 가나안에 이르는 고단한 광야교회를 통하여 성화되는 기나긴 기다림이다. “인간은 새는 바가지다그래서 견뎌야하며 버텨야한다. 미국의 부흥사 무디(D. L. Moody, 1837~1899)의 말이다.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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