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덕 교수
김 재 덕 교수

요3:1~11절에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 방법을 부모는 자녀 양육(교육) 방법에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교사이시고, 니고데모는 학생이고, 당시의 환경은 어느 날 밤이었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주제였습니다. 교육 목표는 ‘거듭남의 이해’라고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사용된 교육 방법들이 무엇이었을까요?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종교 의회 의원이고,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이며, 예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의 복음을 방해하는 바리새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당신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선생님이 베푸시는 기적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니고데모가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뢰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어두운 밤에 예수님이 계신 곳을 은밀하게 방문했던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위험을 무릅쓰고 밤에 예수님을 방문한 이유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예수님께서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개인적인 입장과 고민을 깊이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부모는 자녀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서 자녀의 부족한 점은 덮어주면서, 좋은 점은 칭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알기 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거듭나야만 볼 수 있다고 하시자, 니고데모는 거듭남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듭남’이라는 개념을 통해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동기를 유발하시자, 예수님과 니고데모는 묻고 질문하는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처럼 주제에 대한 목표를 명확하게 달성하기 위해, 교차적인 질의응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거듭남의 의미를 글자대로 해석하여 이해의 한계에 봉착하자, 예수님은 거듭남에 대한 설명을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육체가 아닌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고, 그 성령은 마치 바람과 같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해야 거듭남이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마치 바람과 같이 작용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임하는 것을 추상적으로 설명하지 않으시고, 바람의 현상을 이용하여 거듭남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성령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다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예수님은 보이지 않은 성령은 믿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성령의 주체는 예수님 자신이고, 광야에서 뱀을 쳐든 것처럼 자신이 들려야 가능하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지만, 빛과 진리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것과 함께 성령과 연관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양육(교육)할 때도 주제와 연관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통해 자녀는 주제의 내용을 좀 더 풍요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 곧 영생을 얻으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성령은 예수님 자신이므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야 영생할 수 있음을 니고데모에게 대화법을 사용하여 설명하셨습니다. 대화법은 질의응답을 통해, 교육자는 피교육자의 질문이나 답하는 내용의 수준을 판단하여, 설명을 짧게 또는 길게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교육자의 이해 수준이 확장될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끄는 것입니다. 결국, 대화법은 대화 상대가 주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이해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현상이나 사물을 활용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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