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인 찬 목사.
황 인 찬 목사.

‘한국교회가 불량품 같다.’고 말한 기자가 있었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인들에게 그 같은 소리를 들을만한 일들이 그 동안 우리 교회 안에 있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여러 사유가 있지만 교회가 신자에게 하나님의 뜻과 섭리하심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가르치지 않았거나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한 탓일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설교를 많이 했다. 예수 믿어 복 받는다는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지 않다. 사실 예수 믿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도 하다. 

문제는 과연 무엇이 진정한 기독교적인 복인가를 가르쳤어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는 것을 바로 가르치지 못했음을 자인한다.

믿음생활은 단순히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고, 기도하고, 헌금과 봉사를 하는 것 만일 수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삶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삶보다 말이 앞선 교회가 되어 세상으로부터 ‘불량품’이라는 치욕적인 취급을 받는 아픈 교회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형통을 말씀하시고, 그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고, 심지어는 회사에서 내 쫒기거나 경영하는 회사가 망하기까지 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는 수로보니게 여인에 대한 생각이고, 또 하나는 순교에 대한 생각이다.

마가복음 7장에 귀신 들린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 온 수로보니게 여인에 대하여 보편적인 예수님의 태도와 달리 뜻밖에 냉담하시다. 그럼에도 예수님께 간절하게 간청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냉담을 넘어 매정한 말씀을 하신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7:27)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개(犬)취급하듯 예수님이 그 옳지 않은 유대인처럼 말씀하시고 행동하셨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그릇된 유대인들과 똑같이 모욕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그 행동이 진심이 아니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때 그 연인의 절박함과 진심을 달아보고 계신 것이었다.

왜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마음에도 없는 모욕을 하신 것일까. 그것은 그 여인의 믿음을 달아보심이다. 이렇게 무시당하고, 모욕당해도 예수님을 믿고 간구하고 매어 달리는 믿음인가를 보고자 하셨다. 여인은 그 같은 예수님의 모욕에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 중심이 그 절박함이 얼마나 주님을 믿고 향했는지를 고백 드린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그 여인의 딸은 즉시로 온전케 되었다.

왜 하나님은 때때로 정직한 자를 손해 보게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는가. 하나님이 망하게 하신 것은 아니라도 망하는 것을 왜 막아 주시지 않으시는 걸까. 그것은 이래도 나를 믿겠느냐. 이래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느냐. 이래도 정직을 고집하겠는가를 알아보시는 하나님의 시험 방법이다. 이 테스트에 합격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칭찬하시고, 우리에게 형통한 삶의 복을 주실 것을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에는 그 같은 하나님의 시험을 잘 통과하여 말씀대로 형통케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뜻과 방법대로 살다가 손해보고, 어려움을 격고, 회사 문을 닫고, 망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 주시는가를 보고 싶다. ‘하나님의 뜻과 방식을 고집했던 사람들의 결과가 언제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되는가.’ 그렇지 않다. 여기에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하나님의 뜻을 고집하다가 망했지만 결국에는 형통케 된 사람도 있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끝내 죽고, 망한 사람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순교자들이다. 많은 순교자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고집하다가 목 베임을 당하고, 불태움을 당하고, 사나운 짐승에게 잡아먹힘을 당했다. 의인이 고난당할 때 도대체 하나님을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그런데 놀랍고, 부인 할 수 없는 일은 그 같은 순교의 피가 흘려진 땅이 복을 받고, 그 땅의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다. 우리 한국에는 수도 없이 많은 순교의 피가 흘렸다. 로마의 학정 속에서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초대교회 교인들을 제외하고 적어도 세계에서 몇 번째 안될 만큼  많은 순교의 피를 낸 것이 우리 한국교회라고 여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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