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을 한번 되새겨 보고자 한다. “21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아모스5:21-22)

구약에 계시 된 아모스서는 아모스 선지자의 입을 통한 당시의 이스라엘 부패에 대한 경고의 음성이라고 하지만, 수천 년이 지난 오늘 현대 기독교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 생각함이 틀림이 없다. 절기를 미워한다고 하신 말씀은 오늘의 주일을 비롯해 각종 절기를 의미하기도 하며, 성회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오늘 교회가 드리는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지 생각 볼 일이다. 

지도자와 신자들이 어울려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리고 번제나 소제를 받지 않으신다고 하셨음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번제는 무엇이고 소제는 무엇인가? 번제는 예배드리는 신자들이며 소제는 예배 시에 드리는 헌물이 아닌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 하나님이 신자들이 드리는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않으신다고하셨을까? 이는 몸을 드리는 신자들의 헌신은 바로 영적으로가 아닌 육신적으로 만 참여 하고 한 시간 드리는 예배조차도 성의 없이 참여에 의의를 둔다면 이는 하나님과 무관한 예배이며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예배에 드리는 헌금과 헌물은 물질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물질에 대한 감사와 함께 신앙인의 영적인 책임으로 드리는 것보다는 하는 일과 사업 그리고 육신적인 건강을 담보조건으로 드리는 물질이라면 하나님과 무관한 것이 아닐지? 진실로 하늘로부터 공급받은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후 드려진 물질이 성경에 계시 된 대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드린다면 하나님의 왜 받지 않으신다고까지 하시겠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질의 성격도 매우 중요하다.

아모스 선지자는 부패하고 타락한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라고도 보지만, 사실 이 메세지를 시대를 초월하여 읽는 자들을 향해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현재 적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뜻으로 믿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성경이 기록된 이후에 오늘날과 같이 교회가 세속화되어 가는 것은 일찍이 경험치 못했다. 물론 미래를 경험한 자들은 아무도 없었겠지만 하나님의 계시 된 말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수천 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라고 보지만 언제든지 현 시대에 적용이 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과연 현대 기독교를 형성하고 있는 지도자와 신자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에 영적으로 올바르게 하나님의 받으시는 예배(산 제사)를 드리는지가 의문이다.

주일이나 각종 대 소 예배를 드릴 때 진정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당연히 헌신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예배에 임하는지도 의문이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 신자로서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최우선으로 실현해야 함에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예배를 소홀하게 취급하지 않는지도 말이다. 그리고 직분과 체면에 의해 억지로 교회에 참여는 하였지만 실제로는 세상의 사업과 직장과 인간관계라는 소소한 잡념에 사로잡혀 진정 예배는 형식적으로 드리지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니 지금도 아모스 선지자의 경고가 유효하며 그의 경고가 오늘 우리에게 해당한다고 보아도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회는 십일조, 감사예물, 그리고 각종 특별 헌금을 거의 강요하다시피한다. 교회의 중진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종교세와 같은 십일조, 작정 헌금, 건축헌금, 특별 헌금에 대해 음성적으로 강요 하는 실정은 아닌지? 그런데 뜻으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리고 하지만 실제로는 성경에 계시 된 취지와는 다르게 교회 기획에 의해 사용하는 것 같은 모습은 지울 수 없다. 헌금의 주목적은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구제하고, 보호자가 없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병든 자들을 보살피기 위해 사용했다고 사도행전은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 교회는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는데도 건축이 헌금 사용에 제일의 목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오늘의 교회를 향하여 “...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하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의 높이 솟은 마천루와 같은 고급스런 건물이 진정 하나님이 원히시는 성전이며, 그곳에 하나님이 좌정하고 계실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꼭 수 천, 수 만 명이 한곳에 모여 예배를 드려야 만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에 두 세 사람 모인 곳에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한 말씀을 되새김질하면 어떨까?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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