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지금 기독교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선교 200년이 된 한국교회는 현재 어떤 상태에 와 있으며 지도자나 신자들의 믿음의 순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깊이 돌아볼 때이다. 오랜 세월 기독교는 고등 종교로서 지위를 누려 왔으며 영혼 구원의 신앙을 고수하며 왔다고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를 이루고 있는 지도자와 신자들의 신앙의 순도가 성경의 계시에 따라 영혼 구원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선교 초기에는 지도자들과 신자들의 신앙이 기독교 순수 신앙이 요구하는 신앙의 순수성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 세상에 머무르는 동안 초기 기독교의 순전한 행태가 형식적으로 바뀌는 것 같은 감정을 버릴 수 없다. 본래 기독교의 순수 신앙은 세속을 초월한 믿음의 가치를 중요시하였었는데 현대는 세속적인 가치를 기독교 순수 신앙에 접목하여 눈에 보이는 성장을 추구하다 보니 본래 교회의 거룩함과 순전성이 줄었다고 본다. 

지금 사회인들이 교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디이며 무엇인가? 성장과 발전을 기독교 부흥의 잣대로 볼 때 눈에 보이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교회 건물의 세속적인 가치 추구와 그에 따른 눈으로 보이는 성공의 잣대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 선교의 현실이다. 세상의 성장과 발전의 기준은 외형적인 가치에 방점을 둔다. 그래서 대 중 소 기업의 성공 좌표는 바로 현대적으로 세운 사옥에 두고 있다. 발전의 속성은 바로 넉넉한 재정 자본과 담보로 제공 할 수 있는 든든한 최첨단 사옥 건물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에서 성공의 신화가 보이지 않는 가치를 존중하고 의미 있게 여기는 종교에 유입되어 종교의 건실성과 진실성을 눈에 보이는 건물에 두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결국 교회 성공의 실적을 세속적인 양으로 채우기 위한 물적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선 신도들의 허리가 휠 정도로 부담되게 한다. 세상의 기업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므로 그 종교의 성공 여부를 눈에 보이는 가치로 전락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교회는 세속적인 성공을 기획하다 보니 진작 종교인 기독교가 취해야 할 성스러운 면은 소홀하게 여기게 되었는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사십년이 넘게 지은 성전을 향한 예수님은 무너뜨리는데 사흘의 시간을 제시한 것과 같이 인간이 준비한 막대한 예산과 인력 그리고 건축 기간은 아무 소용이 없다. 신이 떠난 쓸모없는 성전을 헐고 다시 세우는데 필요한 시간은 불과 사흘이면 된다고 선언하셨다. 그만큼 신앙과 믿음이 아닌 인간의 물욕과 명예심으로 축조된 성전이나 교회 건물은 죄인의 생명을 구원하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함을 인지해야 한다. 오히려 굶주리는 자에게 식량을, 목마른 자에게 마실 물을 위한 우물을, 헐벗은 자에게 입을 옷을, 영양이 결핍한 어린이와 노약자들에게는 영양제를, 지진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보금자리를 잃은 자들에게는 비를 피하거나 한파를 막아줄 임시주택을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말세에 기독교회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수단과 올바른 방법이 아닐지?

교회 건물 하나 짓는데 수백억에서 수천억을 들이는 교회도 있는데 앞으로 그렇게 지은 호화로운 건물 건축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하늘에 속한 교회가 꼭 해야 하는 일인지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서구에 가면 역사적인 유물 건축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물론 유물로 남은 건물을 통해 당 시대의 시대상과 사람들의 지혜와 건축 예술에 대한 고고학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어렵게 살던 시대에 고대 건축물 한 동을 건축하려고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었고 또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건물을 짓는데 소요된 비용이 상상도 못할 정도임을 예측할 수 있다. 과연 앙상하게 남은 유적지가 현대인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지?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재림과 신자들의 휴거가 진리임을 믿는다면 구원받은 신자들의 영혼이 중요하지 불에 탈 건물이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기독교의 진행 방향을 세속적인 물량에서 찾는다면 지금 신자들에게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의 건물을 짓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서 건물에 투자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 건물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약성서에 기록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몸은 영혼이 거듭난 신자들이라고 분명하게 계시했다. 그러면 신자들이 내는 헌금으로 꼭 교회의 외형적인 건물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야 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가 전쟁으로 죽음에 이르는 생명이 넘쳐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고국을 떠나야 살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안고 난민이 된 수많은 사람이 우리의 눈앞에 있다. 이들을 돌보아야 할 책임이 과연 누구인가?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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