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인 찬 목사
황 인 찬 목사

하나님의 정직을 고집하다가 회사 문을 닫고 망한 것도 일종(?)의 순교라고 믿는다. 그 같은 순교의 피가 우리 한국교회와 사회에 필요하다. 그래야만 교회가 다시 살고, 우리나라가 다시 살 것이기 때문이다. ‘정직한 자의 형통’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는 ‘정직한 자의 고통’ ‘정직한 자의 억울함’ ‘정직한 자가 바보 됨’ ‘정직한 자의 실패’ ‘정직한 자의 눈물’ ‘정직한 자의 망함’이라는 피를 이 땅에 뿌려야 한다.

아이러니(irony)하게도 일제 때 죽으면 교회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신사참배를 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죽으면 끝이라며 신사참배를 하고 살아남아 교회를 지키려 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를 지킨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교한 자들이었다. 저들이 피가 교회를 살리고, 비겁하게 살아남은 우리들이 그 형통과 복의 열매를 따고 있다. 정직하게 하나님의 방법을 고집하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정직에는 너무나 함정이 많다. 

하나님의 큰 뜻과 방식은 ‘정직함의 결국은 형통’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형통의 열매를 누구나 다 당대에 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잘못하면(?) 나는 그 열매를 따지 못하고, 정직의 순교자로 정직의 함정에 빠져 매장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섭고, 억울해서 순교를 거부한다면, 모두가 다 살아서 정직의 열매인 형통을 보겠다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적인 박토가 되어 점점 더 살기 어려운 세상을, 사랑하는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정직의 고통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정직의 고통보다 더 큰 것은 거짓의 고통이다. 당장 죽지 않고 연명하기 위해 거짓을 행하고 불의로 사는 세상은 얼마나 우리를 비참하게 하고, 힘들고 어렵게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결국은 사망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아크 발 샌프란시스코행 유나이티드 항공기 93편이 테러범들에게 납치 된 후 펜실베니아 들판에 추락했다. 다른 납치된 비행기들은 펜타곤과 무역센터 빌딩에 충돌했으나 이 비행기는 들판에 추락하여 자신들만 희생당하고 다른 생명은 다치지 않았다.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 비행기에는 토드 비머라는 승객이 있었다. 그는 비행기 좌석용 전화기를 통해 교환원에게 승객 몇 명이 합세해서 테러범들과 싸우려 한다는 상황을 전했다. 그리고 자기 아내에게 ‘사랑 한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주기도문을 암송한 후 전화는 끝이 났다. 그러나 끊겨 지지 않고 매달려 있는 전화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준비 되었소? 오케이. 갑시다.”(Are you ready? OK. Let's Role !!!) 이것이 그들이 이 땅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토드 비머도 죽었고, 펜타곤과 무역센터에 충돌한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승객들도 죽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들의 죽음을 똑같은 죽음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죽을 것인데 왜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렇게 죽어갔을까. 토드 비머처럼 죽을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저들은 죽어서도 그것이 얼마나 후회스럽고 부끄러울까.

왕비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구하기 위해 왕의 부름이 없는데도 죽음을 무릅쓰고 왕에게 나가면서 고백한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결단이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말씀이다.

정직에는 하나님의 뜻과 방식의 함정이 있다. 그 첫째 함정은 용기 없음 즉 비겁 함이다. 그 함정을 뛰어 넘어야 한다.  ‘죽으면 죽겠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정직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율법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방식이다. 정직하면 손해 보는 세상에서도 정직을 고집하는 것이 믿음이다. 진실하고 정직하다가 손해를 보는 것이 믿음이다.

교회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그리스인이다.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섬김과 봉사를 해도 세상에서 세상 방식대로 살면 그는 엄밀한 의미의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의를 위하여 받아야 할 핍박을 받아야 한다.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우리가 복을 받고, 우리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 그 형통의 열매를 대개는 당대에 따지만 당대에 그 형통의 열매를 따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열매를 후손들과 후대들이 결국은 따게 될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 형통의 복을 물려주기 위해 정직의 함정. 용기 없음을 믿음으로 뛰어 넘어 정직한 삶을 사는 믿음의 사람, 이 땅의 십자가의 사람이기를 기대한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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